수요일, 달리는 날이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각했다. 한강 라이브 영상에서 여의도의 빌딩들이 뿌옇게 되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날은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재난문자가 난리를 쳤지만, T님이 게스트로 오겠다고 약속해서 안 갈 수가 없었다. 늘 겸손한 태도에 운동에 있어서는 성실한 타입이어서 마음으로 응원하는 친구다. 몇 년을 클럽에서 열심히 활동하다 작년에 갑자기 클럽을 나가,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을 했다. 게다가 다른 대회들은 나가고 있어, 클럽에서 무슨 상처를 받았나 싶은 마음에 먼저 연락을 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스트라바에서 내가 뛰는 것을 열심히 응원을 해주고 있어, 언젠가 스치듯 한번 연대로 오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게 오늘이었던 거다.T님은 별도로 달리기 훈련을 하지 않는다고 해 인터벌 ..
책모임이 오늘인데, 어제 책을 읽다 잠들어 반절밖에 읽지 못했다. 지하철에서 열심히 읽긴 했지만, 아무래도 모임 시간 전에는 다 읽기 힘들어 보였다. 잘 읽히는 책이라도 절대 페이지 수라는 게 있으니까. 주말 대타해서 써야 하는 비공식 연차가 있어, 오후 반차를 내서 책을 읽기로 했다. 다른 일정이 아니라 책을 읽기 위해 쉰다니 참 팔자도 좋다.책모임을 건대에서 하니까 처음엔 건대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려고 했다. 근데 이젠 모임 전까지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책을 금방 다 읽을 것 같았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어린이대공원으로 산책을 가면 좋겠다 생각했다. 써야 하는 투썸 기프티콘이 있어 어린이대공원 바로 앞, 세종대 투썸플레이스로 갔다. 이렇게 날이 밝은 때에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게 도대체 ..
1. 인연이 아니었다고 마음을 접었던 무선충전 보조배터리를 찾았다! 사무실에 있는 의자의 틈에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의자를 해체하려고 하다 발견했단다. 물건 잃어버리고 되찾은 후 기쁨 Top2에 등극! Top1은 비가 엄청 쏟아지던 어느 날 3호선 안국역에서 지하철에서 두고 내렸던 우산을, 지하철 문이 운 좋게 다시 열려 되찾은 때다.2. 독수리가 알을 낳을 때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렇게 썼는지도 기억을 못 했는데, 작년 상반기에 내가 다시 보고 싶은 콘텐츠로 독수리 둥지 라이브를 선정했다는 걸 알았다. 독수리가 빠르면 1월 초에 알을 낳는다고 해서, 계속 페이스북 그룹의 글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엄마 독수리인 재키가 팬케이크를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팬케이크는..
두 달 전 얼리버드로 사놓은 퓰리처상 사진전에 다녀왔다. H는 10년 전쯤 갔다 왔다 해서, J와 B랑 셋이서만 가기로 했다. 오래전 가봤던 기억으로 두부집인 백년옥에서 점심을 먹자 했는데,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아 줄을 서서 먹었다. 맛은 좋았으나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은 예감. 다음 달에 J의 사촌언니네 집에 놀러 가는 이야기를 하다, J와 B 둘 다, 여행 전날 설레서 잠을 잘 못 잔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귀여운 친구들. 아무래도 네 명 중엔 내가 제일 잠을 잘 자는 것 같다.퓰리처상 사진전은 고흐 전시보다는 사람이 적은 편이었지만 꽤 북적였다. 오디오 가이드 때문인지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사진과 설명만 빠르게 읽으며 지나갔다. 퓰리처상은 언론과 예술 분야에 주는 상이라고..
11일 전 아침, 분명 충전선을 꽂고 잠들었는데 핸드폰이 충전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배터리가 얼마 없어 피크민도 못하고, 아침 루틴인 듀오링고+말해보카도 못한 채 보조배터리에 선을 꽂아 충전하면서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했는데, 여전히 배터리가 20% 미만이란 걸 알았다. 알고 보니 보조배터리에 연결했을 때 처음엔 충전이 되다가 곧 충전이 안 되는 상태로 변경이 되고 있었다. 보조배터리가 문제인가, 선이 문제인가 이렇게 저렇게 파워와 선을 바꿔보며 테스트를 해봤는데, 문제는 핸드폰이었다. 회사에서 무선충전기를 찾아줘서 테스트해 보니 무선 충전은 되기에 급한 불은 껐다.내 오래된 아이폰12미니는 배터리 성능이 매우 좋지 않다. 그래서 밖에선 거의 보조배터리에 탯줄로 연결한 태아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당장..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곳은 남북으로 낙동강이 흘렀다. 강 옆에는 거의 100미터가 되어 보이는 높은 둑이 쌓여 있었다. 평소에는 강물까지 내려가려면 꽤 한참을 내려가야 해서 그 높이만큼 비가 올까 의심이 들다가도, 여름 장맛비에 둑 높이만큼 찰랑거리는 강물을 보며 자연의 무서움을 느끼곤 했다. 내가 처음 그 마을에 갔을 땐, 6.25 때 폭파되었다는 다리 잔해가 강 아래 잠겨 있었다. 북한군이 대구까지 내려왔는데, 더 내려오지 못하도록 폭파했다는 다리 중 하나가 이거일 터였다. 내가 마을에 도착한 후 몇 년 후에 다리 잔해가 치워지고, 복구되며 인도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우리 집에서 인도교까지는 2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였다. 에어컨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의 어느 여름밤, 우리는 돗자리와 수..
한강 책 읽기 두 번째 모임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년이 온다보다, 조금 더 문학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연, 읽으며 문학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에 많이 헷갈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후반의 경하와 인선의 대화도, 어디서부터가 환상 혹은 꿈일지, 실제 일어난 일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도록 되어 있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이 좋았다. 시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고, 오히려 잘 읽지 않는 편인데 한강의 문장은 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표현이 너무나 아름답고 적확해서, 작가가 이끌어 가는 이야기의 풍경이 눈앞에 생생히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몰입도도 가장 높았다. 문학적인 완성도와 별개로,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
수요일, 연대에서 뛰는 날이다. 지난주에 추위 대비를 하지 못해 덜덜 떨며 집에 왔던 순간을 떠올리며, 오늘은 핫팩, 귀도리, 모자를 준비했다. 장갑도 그때보단 두꺼운 걸 챙겨 왔다. 깜박하고 버프를 안 가져왔지만, 조끼가 목을 그래도 감싸줄 거라 믿었다. 오늘의 옷은 총 5개의 레이어였다. 기모 상의, 조끼, 바람막이, 보온 자켓, 집에 갈 때 입을 털 달린 패딩. 처음 달릴 때는 패딩을 벗었고, 다섯 바퀴쯤 돌아 몸이 더워졌을 때 보온 자켓을 벗었다.오늘도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1시간 동안 조깅이라고 했지만, 언제나처럼 조금 더 빨리 달려 거의 5:20으로 달렸다. 조금 빠른 속도여서 다들 말도 하지 않고 달리기만 했다. 원래 연대 운동장은 늦게까지도 불이 환히 켜져 있었는데, 축구가 일찍 끝나는 바람..
점심을 책임지던 위잇이 사라지고, 점심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밖에 나가기 귀찮아 점심을 시켜 먹었던 거라, 대체로 근처 가게에서 배달을 시켰다. 배달한 샌드위치나 샐러드는 가격대비 퀄리티가 현저히 낮아 만족도가 낮았다. 가끔은 샐러드를 집에서 싸가기도 했는데, 먹을 때 만족도는 높았지만 준비 과정이 너무 번거로워 포기하는 때가 많았다. 한동안 먹지 않던 회사 근처 밥집들을 갔는데, 역시나 한 바퀴 돌고 나니 지겨워졌다. 그러던 와중에 푸드박스를 알게 되었다.푸드박스는 냉동 도시락은 먹기 싫은데, 매일 아침 배달해 주는 점심 도시락을 먹고 싶은 직장인들을 위한 서비스다. 최소 2명이 주문해야 해서, 회사의 R님이 사람들을 모았다. 도시락 아니면 샐러드를 시킬 수 있었는데, 한 끼 가격이 7,700원으로 ..
나는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았다. 단 한 번도 앞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이건 엄마 아빠의 유전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참 키가 자라야 할 시기에 잠을 자지 않았던 게 더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보통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자야 성장 호르몬이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가 가장 재미있을 때였다. 목이 돌아가도록 누워서 책을 읽기도 했고, 빌려온 만화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반복해서 읽기도 했으며, 주말의 명화를 놓치지 않고 챙겨봤다. 더 커서는 새벽에 PC통신으로 게임을 하며 전화 요금을 낭비하기도 했다.그래도 새벽까지 깨어 있는 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새벽 2시가 된 어느 날, 나는 학교 괴담을 떠올렸다. 어느 학교마다, 과거에 공동묘지 혹은 정신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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