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가 친구들 모임에 참석하러 서울에 왔다. 원래는 버스를 타고 온다고 들었는데, 월요일 새벽에 일찍 내려가기 위해 운전해서 오셨단다. 엄마를 통해 발을 살짝 다쳤다고 들어서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엄마가 김치 떨어졌냐고 묻더라니.오늘 아무 일정이 없다고 하자, 아빠는 스케줄을 짜보라고 했다. 아빠는 영화보길 꽤 좋아해서, 요새 뭘 상영하는지 봤다. 아빠 취향의 ‘승부’가 있었지만,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망설이는데, 아빠가 갑자기 은평한옥마을을 이야기했다. 나는솔로에 나왔던 적이 있단다. 우리 집 근처로 왔던 친구와 카페에 들르거나, 은평둘레길을 걷다가 중간에 편의점에서 쉰 적이 있던 곳이다. 북촌처럼 예전부터 있던 마을도 아니고, 그냥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한옥촌이라 무슨 ..

천안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친구의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동생이 이상하다고 했다. 이름이 같은 도서관을 방문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천안이 멀지는 않지만, 막혀서 늦을까 봐 서둘러 갔더니 시간이 좀 남았다. 피크민 산책을 할 겸 돌아다녔다. 어디선가 불경을 외는 소리가 들려 홀리듯 따라가니 두 절이 마주하고 있는 신기한 풍경이 있었다. 10분 거리에 보물로 지정된 불상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커다란 바위에 옅지만, 코는 꽤 오똑하게 새겨진 천태산 마애여래입상이 있었다. 안내문을 통해 ‘마애‘는 바위에 새겼다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빨간색 옷을 입은 산림 경찰이 산불 조심 안내문을 건네주었다.친구의 친구, K는 H의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라고 했다. 그동안 간간히 이름을 ..
이번 주 키워드는 ‘피곤‘이었다. 이번 주 내내 신규 입사자 교육을 해서 정신이 없었는데, 회사에선 크고 작은 일들이 자꾸 터졌다. 집에 와선 쓰러지듯 잠들고, 눈을 뜨면 곧장 출근을 했다. 수요일엔 달리기를 하러 가지 않았고, 목요일엔 예정되어 있던 약속을 취소했다. 몸이 도저히 버텨주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거의 9시부터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잠에 들기 전 J님에게 전화가 왔다. 이불 빨래를 하러 빨래방에 갔는데, 세제를 뜯지 않고 돌리는 바람에 다시 돌려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길어져 기다리다 생각나서 전화했단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 한참을 열을 올려 이야기하다보니 내가 꽤 화가 나 있었다는 걸 알았다. 화가 났지만 그걸 털어놓을 기회가 없었구나 깨달았다. 나 혼자 한참을 떠들고, J님도..
핸드폰 메인에 띄워둔 일기장 위젯으로 과거의 오늘 일기를 들여다본다. 길을 걸어가다 문득 깨달은 생각, 자주 꾸는 꿈, 사소하게 기뻤던 일, 말도 안 되게 화가 났던 일 등등, 안네가 키티를 친구로 여긴 것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털어 놓곤 한다. 나는 종종 과거에 내가 했던 행동들을 까맣게 잊곤 해서 이 기록은 과거의 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3년 전엔 슬픈 일이 있었다. 26일에 병원에 짱구의 안락사를 예약하고 전날 연차를 냈다. 마지막 순간을 오래 함께하고 싶어서다. 아픈 고양이는 2주간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물도 마시지 않은지 며칠이 지났다. 몸은 뼈가 만져졌고 피부병 때문에 털이 무더기로 빠졌다. 약도 못 먹었기 때문에 8년간 짱구를 괴롭힌 구내염 증상이 심해져, 입안은 침으로 가득..

책장을 털기 위해 만든 책모임의 이름은 ‘노래방‘이다. 돌아가면서 각자가 원하는 책을 골라 같이 읽기 때문이다. 이번 책은 지난주에 객원 멤버로 함께했다가, 계속 노래방 마이크를 잡아보기로 한 E님이 선택했다. ‘젠더 트러블‘은 E님의 서재에 오래 머물던 책이라고 한다. 나도 제목은 들어보았으나 읽어볼 기회는 없던 책이어서, 책 선정을 반겼다. 하지만 책을 선정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E님이 책이 너무 어렵다며, 다른 책으로 바꾸자는 말을 했다. J님은 수술 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이 책을 수면책으로 썼다고도 했다. 하지만 다들 조금의 엄살이 있을 거라 생각해 책을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읽기를 강행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직접 이 책을 펼쳤을 때,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요’라는 말을 ..
5시 알람이 울렸다. 어제 대략 짐은 싸놨고, 30분에 출발하면 된다는 생각에 느리게 움직였다. 씻고 집을 나선 게 45분, 공항철도까지 뛰어가면 시간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너무 자신을 과신했다. 지하철 하나를 놓치고, 썼던 모자를 벗어 손에 쥔 채 남은 시간을 계산해 봤다. 지하철이 서울역에 도착하면 기차 출발 시간 5분 전이라, 엘리베이터 운만 좋으면 기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운이 몹시 나빴다. 엘리베이터도 하나 놓쳤고, 사람이 내리거나 타지도 않았는데, 층별로 문이 열렸다. 열심히 뛰었지만, 기차가 코 앞에서 떠나는 걸 봐야 했다.미리 기차표를 취소했다면 취소 수수료가 3,000원쯤 했을 텐데, 기차가 떠나고 난 후라 7,000원이 넘었다. 다음 기차는 1시간 20분 뒤였..
날이 많이 따듯해졌다. 건대입구에 살던 J가 독립을 해, 지하철로 세 정거장 거리에 이사 왔다. 지도앱으로 50분, 빠르면 걸어서 40분으로 예상됐다. 겨울 내내 꽁꽁 얼어붙어 그 위를 걸을 수 있던 천이 녹았고, 백로는 물살을 헤치며 조심스레 걸었다. 산수유 꽃이 노랗게 피고, 파릇파릇한 풀들이 올라와 봄빛을 더했다. 산책을 나온 사람들, 땀 흘리며 뛰는 사람들, 자전거를 힘차게 굴리는 사람들이 불광천을 채웠다. 혹시 몰라 들고 온 겉옷은 진작에 벗고 따듯한 봄기운을 느끼며 파워 워킹을 했다. 12시 정각. 다들 도착해 있었다. J가 미리 음식을 준비해 둘 테니 더 일찍도 늦게도 아닌 12시에 오라고 해서 맞춰왔다. 하지만 그 말과 달리 이제 막 요리를 시작한 느낌이었다. 다 같이 잡채를 데우고, 파전..
7월에 핀란드에 가기로 했다. 회사엔 5일 반 정도 휴가를 쓰는 걸로 이야기했다. 협의인지 통보인지 모를 말을 하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거의 180만 원이다. 경유하는 더 저렴한 비행기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잘 맞지 않아 핀에어 직항으로 가기로 했다. 아직 대회는 신청하지 않았다. 국가대표로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선택지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출발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경쟁클래스로, 5일간의 성적이 합산되어 순위를 매겨 시상식을 한다. 다른 하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출발할 수 있는 오픈클래스로, 순위를 매기지 않고 경품 추첨으로 기념품을 준다. 치앙마이에선 이래저래 상을 받았지만, 돌로미티에서 꼴찌만 했던 기억이 있어 고민이 많이 된다. 현재 내 나이대의 경쟁클래스에는 20명이 좀 넘게 신..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은 아니지만, 인스타에 매달 회고글을 올린 이후로 ‘이달의 음악‘에 신경을 쓰게 됐다. 예전엔 좋아하는 콘텐츠의 OST를 통해 새로운 노래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처럼 콘텐츠를 많이 보지 않는 시기에는 주로 알고리즘의 축복으로 노래를 만난다. 유튜브 뮤직은 첫 번째 노래를 선택하면, 그 뒤로 비슷한 노래들을 연이어 들려준다. 이달의 음악은 가장 많이 선택한 첫 번째 노래를 올리곤 한다.알고리즘이 없던 고등학교 때는 라디오가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창구였다. 10시 반부터 12시까지 기숙사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할 때는 늘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들었다. TV도 볼 수 없고, 인터넷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무심히 듣다가 귀에 확 꽂히는 노래가 나오면, 들..

다시 추워졌다. 감독님이 60분을 조깅으로 달릴지, 아니면 웜업 15분 + (T 1km + 휴식 1분)x3 + (H 3분 + 조깅 2분)x3 + 쿨다운 15분으로 인터벌을 할지 물어보셨다. 많이 춥지 않으면 인터벌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60분 동안 지속주로 달리는 건 너무 지루하다. T와 H가 뭔지 물어보니, Threshold는 적당히 힘든 강도의 달리기로 10km 페이스라고 해서 5:10으로 설정했다. Hard는 강도 높은 인터벌 훈련으로 4:40을 설정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3분 동안 그 속도로 달리는 건 버거울 것 같아 4:45로 설정했다.최근에 인터벌을 할 때 한 가지 패턴을 6번, 8번 반복해 달렸다. 오늘은 두 가지 패턴을 3번씩 반복했는데, 조금 힘든 목표였지만 3번만 한다고 생각하니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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