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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털기 위해 만든 책모임의 이름은 ‘노래방‘이다. 돌아가면서 각자가 원하는 책을 골라 같이 읽기 때문이다. 이번 책은 지난주에 객원 멤버로 함께했다가, 계속 노래방 마이크를 잡아보기로 한 E님이 선택했다.

‘젠더 트러블‘은 E님의 서재에 오래 머물던 책이라고 한다. 나도 제목은 들어보았으나 읽어볼 기회는 없던 책이어서, 책 선정을 반겼다. 하지만 책을 선정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E님이 책이 너무 어렵다며, 다른 책으로 바꾸자는 말을 했다. J님은 수술 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이 책을 수면책으로 썼다고도 했다. 하지만 다들 조금의 엄살이 있을 거라 생각해 책을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읽기를 강행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직접 이 책을 펼쳤을 때,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요’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50%까지 읽다가 이건 책을 읽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는 생각에 포기를 했다.
J님은 책 대신 EBS에서 위대한 수업 영상을 봤다고 했다. 나도 2회까지는 봤었는데 그 뒤의 영상은 보지 못했다. 유튜브에 찾아보니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올린 1시간 20분 영상이 있었다. 책보다는 이해가 쉬웠다. 책모임 전 30분 정도를 봤는데, ‘이미 섹스는 젠더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이제까지는 섹스를 타고난 성별, 젠더를 문화적으로 구분되는 성별이라고 분명하게 나누어 생각했었는데, 섹스에 이미 젠더가 포함이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섹스가 정해진 것이어서 바뀌지 않는 것이라면, 남성으로 태어난 이들에게, '남성적이 되어라'라는 요구가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실제로 트랜스젠더를 만나본 적이 없어 몸과 성별의 불일치감을 느끼는 상태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어릴 때 여자로 태어난 게 싫었고, 여성적인 모습으로 나를 꾸미고 싶지 않아 화장도 안 하고 하이힐도 신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여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J님은 나처럼 일부러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아 왔는데 그게 트랜스젠더와 어떻게 다른 것인지 궁금해했다. Y님은 대중문화에서 보이는 트랜스젠더의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러 여성성을 강조하는 모습이 과연 진정성이 있는 모습일까 의심이 든다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트랜스젠더의 모습이 거의 다 그런 모습이기에, 트랜스젠더 전체를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워하는 듯했다.
나는 내 책장에서 '오롯한 당신'이라는 트랜스젠더들의 건강에 대한 책을 꺼냈다. 예전에 그 책을 읽으며 놀랐던 부분 중 하나는, 트랜스젠더들이 외부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화장실이라는 것이다. 본인의 젠더와 맞지 않는 화장실을 가야 할 수도 있어서 밖에서는 아무도 없을 때 가거나, 거의 참는다고 했다. 그래서 트랜스젠더에게 방광염이 정말 많다고 한다. 그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도 마찬가지여서, 소수자에게는 이런 기본적인 것부터가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런 내용을 친구들에게 공유하니 나와 마찬가지로 놀라워했다. 사회의 고정관념에 맞는 트랜스젠더가 아닐 경우, 커밍아웃을 하는 것의 위험도 커 보였다. 그러니 우리가 그들을 잘 몰랐던 것일 테다.
우리가 트랜스젠더에 대해 잘 모르고 오해하는 것을 역지사지로 생각해 봤다. 남자들은 여성의 생리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생리는 오래전부터 여자들끼리의 연대 속에서 철저히 숨겨져 왔다. ‘그날‘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한 생리는, 더러운 것이라 생각되어 지금처럼 숨겨온 것 같다. 그러기 때문에 남자들은 생리대 광고에서밖에 생리를 알 수 없었다. 집에 어머니 외의 형제가 없거나, 오랜 여자친구가 없다면 그 실체를 알기 어렵다. 한 달에 한 번은 하루만 겪는 일로 오해되고, 오줌처럼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생리통을 엄살로 여기고, 생리대를 신체 크기에 따라 쓰는 것으로 안다. 주어진 환경에서 알 기회가 없었던 사람도 있겠지만, 알기를 게을리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남자들이 있는데, 김훈의 소설은 대표적인 사례다.
알기를 게을리하지 말자. 내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가 다치지 않도록, 생각을 더 연마하자. 비록 책을 다 읽지 못해 북적북적에 올리지도 못했지만, 쏟은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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