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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일기

3/23 목포로 가는 험난한 길

나비사슴 2025. 3. 24. 18:41

5시 알람이 울렸다. 어제 대략 짐은 싸놨고, 30분에 출발하면 된다는 생각에 느리게 움직였다. 씻고 집을 나선 게 45분, 공항철도까지 뛰어가면 시간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너무 자신을 과신했다. 지하철 하나를 놓치고, 썼던 모자를 벗어 손에 쥔 채 남은 시간을 계산해 봤다. 지하철이 서울역에 도착하면 기차 출발 시간 5분 전이라, 엘리베이터 운만 좋으면 기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운이 몹시 나빴다. 엘리베이터도 하나 놓쳤고, 사람이 내리거나 타지도 않았는데, 층별로 문이 열렸다. 열심히 뛰었지만, 기차가 코 앞에서 떠나는 걸 봐야 했다.

미리 기차표를 취소했다면 취소 수수료가 3,000원쯤 했을 텐데, 기차가 떠나고 난 후라 7,000원이 넘었다. 다음 기차는 1시간 20분 뒤였다. 원래 여유있게 도착하려고 6시 21분 기차를 예매한 거였는데. 목포역에서 대회장까지 버스를 타면 1시간 정도가 걸린다. 택시를 검색하니 30분이 걸렸지만 만 원이 넘었다. 이미 7,000원을 멍청 비용으로 지불했는데 만 원을 더 낼 수는 없었다. 검색해 보니 한 번에 가는 500번 버스가 있었다. 30분 넘게 기다려 버스를 타면 대회장에 아슬아슬하게 도착 가능했다. 서울과 달리 지방에선 버스 도착 시간이 정확하지 않아, 제시간에 못 갈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한 번 갈아타는 옵션은 더 빠르게 갈 수 있어 보였다. 갈아타야 하는 101번 102번 버스의 도착예정시간이 보이지 않아 걱정되었지만, 배차시간이 하루 28번이니 목포역에 도착해서 판단하기로 했다.

목포역은 햇살이 매우 따뜻했다. 오늘은 날씨가 20도까지 올라간다고 들었다. 그제야 모자를 찾으니 가방에 없었다. 지하철에서 벗은 이후에 기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선크림만 꼼꼼하게 발랐다. 다시 버스를 검색했다. 101번 102번 버스는 여전히 도착예정시간이 뜨지 않았다. 지금 운행 중인 버스도 보이지 않았다. 회차하는 버스라 길게 도는 구조인데, 한 대쯤은 보여야 하는 버스가 없어서 불안했다. 일단 희망을 버리지 않고, 환승 정류장까지는 가보기로 했다. 도착하니 정류장에 버스 번호 안내가 없었다. 택시를 검색하니 거기서는 7,000원이 나왔다.

500번 버스 정류장까지는 도보 23분, 버스는 18분 뒤 도착 예정이었다. 그냥 목포역에서 느긋하게 기다릴 걸. 부지런히 걷고 뛰며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버스 도착 예정시간 3분 전에 도착했다. 500번 버스에서 내린 후엔 걸어서 대회장까지 1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큰 도로를 건너야 해 신호등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또 뛰었다.

벅찬 숨을 몰아 쉬며 생각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내내 뛰고 있는 걸까. 현타가 왔다.

늦지는 않게 도착했다. 장비를 정비하고 출발 장소에 가니 출발 3분 전이었다. 어렵게 왔으니 좋은 성적을 내고 싶었다. 그런 바람이 우습게도 2번부터 후회했다. 한참을 돌아가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낭비한 시간만큼 달리기로 보충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9번에서 나보다 늦게 출발한 J언니를 만났다. 그때부터 더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자잘한 실수가 있었다. 만회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뛰었다. 도착하니 땀이 뚝뚝 떨어졌다.

결과를 확인하니, 나를 따라잡은 J언니와는 5분 차이가 났다. 10km도 언니는 44분이고, 나는 52분이었다. 이건 따라잡기 힘든 차이다. 그래도 2위를 했다. 3위와는 겨우 20초 차이였다. 달리기로는 따라잡기 힘들었던 분인데, 따라잡았다 생각하니 기뻤다. 오랜만에 엘리트 대회에서 입상을 했다. 그동안 열심히 달린 보람이 느껴졌다.

바보짓만 안 했다면 더 기뻐할 수 있었을 텐데. 모자와 여유 있는 시간을 잃어버린 내 아침. 다음엔 자신을 과신하지 말고, 미리미리 움직이도록 해보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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