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빠가 친구들 모임에 참석하러 서울에 왔다. 원래는 버스를 타고 온다고 들었는데, 월요일 새벽에 일찍 내려가기 위해 운전해서 오셨단다. 엄마를 통해 발을 살짝 다쳤다고 들어서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엄마가 김치 떨어졌냐고 묻더라니.
오늘 아무 일정이 없다고 하자, 아빠는 스케줄을 짜보라고 했다. 아빠는 영화보길 꽤 좋아해서, 요새 뭘 상영하는지 봤다. 아빠 취향의 ‘승부’가 있었지만,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망설이는데, 아빠가 갑자기 은평한옥마을을 이야기했다. 나는솔로에 나왔던 적이 있단다. 우리 집 근처로 왔던 친구와 카페에 들르거나, 은평둘레길을 걷다가 중간에 편의점에서 쉰 적이 있던 곳이다. 북촌처럼 예전부터 있던 마을도 아니고, 그냥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한옥촌이라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다고, 제법 큰 규모라고 하며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날은 제법 추웠다. 밖에서 오래 걷기엔 좋지 않은 날씨였다. 눈인가 싶게 먼지 같은 게 날리더니, 시간이 지나자 눈발이 두터워지며 어제처럼 마구 쏟아졌다. 동생은 봄에 웬 눈이냐며, 눈을 보면서도 눈을 부정했다. 조금 걷다 보니 한옥과 현대식 건축 스타일이 어우러진 건물이 있어 살펴보니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었다. 추위를 피할 겸 들어가 보았다. 성인 입장료는 1,000원이고, 65세 이상 경로우대는 무료였다. 아빠가 신분증을 꺼내 건네주는데,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박물관 안은 따뜻하다 못해 더웠다. 겉옷을 바로 벗었다. 2층은 은평의 역사에 대해 다뤘다. 은평은 서울로 들어오는 입구로, 역참이 있던 곳이라 했다. 구파발(옛날 파발), 역촌(역참 근처 마을)과 같은 지명에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어린이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역참과 관련된 깨알 상식과 활동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참’은 한 개 참을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는 뜻이란다. 한 개 참을 지나기 위해서는 20~30리를 가야 했으므로, ‘시간이 상당히 지나는 동안‘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단다. 마패에 그려진 말의 수는, 역참에서 빌릴 수 있는 말의 수라고 했다. 서울에서 각 지역에 파발을 보내보는 시뮬레이션 스크린도 있었다. 어명의 내용을 직접 적어볼 수 있어, 동생이 ‘누나는여름이가귀여워‘라고 썼다. 마지막에 어명이 잘 전해졌다며 천장을 보라고 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어이없게 그 내용이 보이고 있어 빵 터졌다.

은평이 조선시대에 대량 매장지로 쓰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은평뉴타운을 개발하며, 부장품 발굴 작업이 많았단다. 박물관 마당에 무덤 앞에나 있을 법한 작은 석물들이 놓여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수색이나 증산이 물과 관련된 지명이라는 것도 알았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이 지역에서 살았지만, 태어난 곳은 아니라 모르는 게 많았다. 만약 할아버지 때부터 살았으면 이 박물관의 내용 대부분이 좀 식상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한옥마을 근처 삼천사의 보물,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에 대해서도 있었다. 어제 천안에서 본 불상과 모습이 비슷했다. 바위에 매우 옅게 새긴 부조인데, 다른 부분과 달리 코를 오똑하게 표현하는 게 그 당시의 유행이었나 싶었다. 찾아보니 모든 마애여래입상이 다 이렇게 생기진 않았다. 우연찮게 이틀 연속 아주 유사한 양식의 불상을 접해 신기했다.

3층은 한옥이 주제였다. 최근에 짓는 한옥은 옛날 방식이 아닌, 개량된 방식으로 짓는다고 했다. 기와도 무게를 줄였고, 잘 무너지지 않게 철골을 사용하며, 단열을 위해 우레탄과 시스템 창을 쓴단다. 동생은 진짜 한옥이 아니라며 실망했다. 직접 한옥을 짓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미니어처가 있었는데, 자리가 빈 곳은 설명서가 없어 나무만 만지작 거리다 그냥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한옥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다. 아빠는 돌아다닐 땐 커 보였는데, 이렇게 보니 또 작아 보인다고 신기해했다.

점심을 먹으러 10분 거리의 연잎밥집에 갔다. 은평뉴타운에 출판사를 다닐 때 자주 가던 곳이다. 스웜 체크인을 하니 내가 이곳에 26번이나 체크인했다는 기록을 보여주었다. 보리굴비 하나와 연잎밥 두 개를 시켰다. 절에서 운영해 반찬이 매우 정갈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처음 연잎밥을 맛본 이후, 다른 곳에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곳의 연근 반찬을 매우 좋아한다. 연근은 간장에 조리는 반찬을 많이 하는데, 여기는 비트와 식초로 피클을 만드는 것 같다. 새콤한데 사각하고 씹힌다. 엄마와 같이 왔으면, 반찬에 대한 영감을 얻어갔을 것이다.

가는 길에 점찍어둔 사비나 미술관이 있어 들르자 했다. 동생은 할 일이 있다고 해서 아빠와 둘이서만 갔다. 아빠와 미술관을 가는 건 처음이어서 걱정했는데, 크루즈 여행을 갔다가 미술 전공한 동행에게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며 흥미를 보였다. 이번에도 경로우대할인으로 표를 샀다. 목탄화로 유명한 이재삼 작가의 개인전을 하고 있었다. 벽을 캔버스 여러 개로 뒤덮는 대형 작품들이 많았다. 달빛에 비친 물과 나무가 주요 주제였다. 아빠는 이 작품에 작가가 쏟은 노력이 놀랍다고 했다. 그런 아빠의 원픽은 나뭇가지를 매우 세세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관람객이 우리뿐이어서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았다.


돌아오는 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지하철으로 환승했다. 응암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이 많아 앉을자리는 경로우대석밖에 없었다. 어제 친구들 모임에서는 당당하게 저 자리에 앉자!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아빠는 왠지 그 정도 나이는 아닌 것 같아 못 앉겠다고 했다.
하루 종일 경로우대를 받으며 새삼 아빠의 나이를 실감하게 되었다. 엄마도 이제 경로우대를 받을 나이가 되었다. 언제나 크게 자리하고 있을 것 같던 부모님이, 점점 작아지는 게 느껴진다. 두 분 모두 크게 건강에 이상이 없는 데에 감사하지만, 부양의 의무를 점점 고려하면서 걱정도 점점 많아진다. 다들 그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자주 연락을 하거나, 보험을 하나 더 들기도 한다. 나는 부모님도, 나도, 서로 건강에 큰 이상 없이 살아가는 게 서로 돕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오히려 부모님이 나를 돌보는 일이 없게 만드는 것도 나름 효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걱정 자체를 없앨 수는 없으니 자식 걱정 없이 본인들의 삶만 걱정할 수 있게 해 드려야지. 지금 내가 할 수 효도는,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많이 보이는 것뿐이다.
'2025년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2-3 절정의 행복 근처 어딘가 (0) | 2025.04.04 |
---|---|
4/1 나아질 수 있다 (0) | 2025.04.02 |
3/31 소년의 시간 (0) | 2025.04.02 |
3/29 친구의 친구 (0) | 2025.03.30 |
3/27-28 웃음으로 마무리한 한 주 (0) | 2025.03.29 |
3/25-26 3년 전 고양이와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0) | 2025.03.27 |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