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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는 망했지만, 마지막 모임에 참석했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두 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원래 8시부터 근황토크를 하는데,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수다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몽당연필을 만들고 싶은 향유고래님, 연필 잡을 힘이 부족해 중지로 잡는 나, 기타 현을 잡을 때 힘이 부족하면 두 손가락을 합치는 마시님, 피아노칠 때도 작은 손은 치기 어렵다고 하는 나, 카페에 피아노가 있다고 알려주는 향유고래님, 아파트에서 피아노를 치면 전방위로 2층까지 소리가 전달된다며 초등학교 때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마시님, 음악을 진동으로 느껴 헤비메탈을 좋아하는 청각장애 할머니 이야기까지. 이야기의 흐름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35분쯤 되어서야 우리가 왜 모였는지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고 각자 자리에 가서 시를 쓴 뒤 9시 15분에 모이기로 했다. 4주 동안 시집을 여러 차례 살펴보며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는 어떻게든 피해왔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이별의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다시금 솟아나는 사랑에 대한 시 두 편을 적어보았다. <파문> <사랑의 출처> 쓸 때는 몰랐는데, 소리 내어 읽어보니 두 시 모두 마지막에 힘을 준 구성이 매우 비슷했다. 시집을 처음 읽을 때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시였는데, 오늘은 그래도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어렴풋이 들리는 듯했다. 이 작가는 시집으로 만나는 게 오히려 더 좋다고 느꼈다. 다른 두 분은 평소와 다르게 사랑을 피해 시를 고르셨다고 했다. 혼자 읽을 때는 전혀 와닿지 않던 시가 소리로 들으니 비로소 입 안에서 씹히고 목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시 공유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또 자연스럽게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시작은 시에서 언급된 아이슬란드에서부터였다. 마시님은 예전에 아이슬란드에 다녀왔다. 백야를 보러 갔는데 겨울에 가는 바람에 뜻밖에 오로라를 보고 왔단다. 그러면서 화산섬이다 보니 제주도와 비슷한 데가 있다고 했다. 나도 이스터섬이 제주도와 풍광이 비슷하다고 들었던 걸 이야기했고, 향유고래님은 제주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여행지에서 제주의 흔적을 찾는다는 이야길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서로 자기의 패를 펼쳐 보이듯, 제주에서 좋았던 장소, 맛집들을 경쟁적으로 공유했다. 네이버 지도가 별로 가득해졌다.
모임 종료 시간인 10시를 훌쩍 넘겨 30분에 일어섰다. 마지막이지만, 아쉬움이 크지 않았다. 마시님도 SF모임에서 보게 될 것이고, 카페도 종종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특히 삼일절이 카페의 1주년 생일이라고 해, 시와 음악과 맥주가 함께하는 파티를 한다며 초대받았다. 생일주간인 S님과 함께 가자고 이야기해 두었다. 모임은 마지막이었지만, 관계는 이제 시작되는 셈이다. 시라는 낯선 세계를 만나려는 의도였지만 새로운 인연이라는 뜻밖의 것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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