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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일기

1/16 작별하지 않는다

나비사슴 2025. 1. 17. 12:01

한강 책 읽기 두 번째 모임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년이 온다보다, 조금 더 문학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연, 읽으며 문학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에 많이 헷갈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후반의 경하와 인선의 대화도, 어디서부터가 환상 혹은 꿈일지, 실제 일어난 일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도록 되어 있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이 좋았다. 시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고, 오히려 잘 읽지 않는 편인데 한강의 문장은 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표현이 너무나 아름답고 적확해서, 작가가 이끌어 가는 이야기의 풍경이 눈앞에 생생히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몰입도도 가장 높았다.
 
문학적인 완성도와 별개로,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사건은 매우 처참했다. 제주 4.3 사건과 관련해서는 일과 관련해서 해당 장소에 다녀온적은 있었는데, 그때는 규모가 이 정도까지 인지는 알지 못했다. 5.18보다 더 오래전,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알려지지도 않았고, 시간이 오래되어서 더더욱 알기 어려웠다. 게다가 4.3이라는 특정 날짜로 지칭하는 사건이지만, 하루에 발생한 일이 아니라 근 8년간의 학살이며, 빨갱이 처단이라는 이름 아래 아직 젖도 떼지 않은 아이들까지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다고 한다. 소설 초반에 악몽을 꾸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모습은 마치 한강의 모습 같기도 했다. 이런 사건을 글로 쓰려고 마음먹었으니 그럴 법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충격적이었던 몇 가지 장면.
1. 제주에서 살다가 서울로 가출한 딸을 꿈에서 본 엄마. 눈이 내리는 데 딸의 얼굴에 내리는 눈이 녹지 않고 쌓이는 것을 보고 죽었구나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수많은 시체 사이에서 얼굴을 식별하기 위해 쌓인 눈을 쓸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디테일이었다.
2. 주로 제주 중산간에서 대대적인 학살이 발생했는데, 학교 운동장뿐 아니라 바닷가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바닷가에서 죽은 이들은 바다로 던져졌기 때문에, 사람들을 먹었을 바닷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는 증언이 있었다.
3. 수직 갱도에 쌓인 누구인지 식별조차 어려운 어마어마한 유해들, 너무나 죽은 사람이 많아 갱도의 입구까지 시신이 차올랐다는 묘사는 '갱도'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깊고 깊은 어둠과 교차해 상상할 수 없을만큼의 학살이 일어났음을 짐작하게 했다.
 
모임에서 이야기 중에,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아 어찌되었든 이 책을 읽게 되는 사람이 많아질 텐데 그러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빨갱이'로 몰아 처단하려는 자들을 경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었다.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에 비상계엄도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가려고 하는 시도였는데, 그것에 동의하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점차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보다, 아닌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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