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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책임지던 위잇이 사라지고, 점심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밖에 나가기 귀찮아 점심을 시켜 먹었던 거라, 대체로 근처 가게에서 배달을 시켰다. 배달한 샌드위치나 샐러드는 가격대비 퀄리티가 현저히 낮아 만족도가 낮았다. 가끔은 샐러드를 집에서 싸가기도 했는데, 먹을 때 만족도는 높았지만 준비 과정이 너무 번거로워 포기하는 때가 많았다. 한동안 먹지 않던 회사 근처 밥집들을 갔는데, 역시나 한 바퀴 돌고 나니 지겨워졌다. 그러던 와중에 푸드박스를 알게 되었다.
푸드박스는 냉동 도시락은 먹기 싫은데, 매일 아침 배달해 주는 점심 도시락을 먹고 싶은 직장인들을 위한 서비스다. 최소 2명이 주문해야 해서, 회사의 R님이 사람들을 모았다. 도시락 아니면 샐러드를 시킬 수 있었는데, 한 끼 가격이 7,700원으로 주변 가게 밥값보다 훨씬 싸서 함께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치앙마이에서 돌아오는 날부터 푸드박스 도시락을 먹었다. 도시락 밥 양도 적지 않고, 샐러드도 퀄리티가 좋아 우리는 매우 만족했다. 같은 층에서 일하는 4명이 주로 같이 먹었다. 만약 갑자기 연차를 쓰거나 하더라도 9시 전까지만 연락을 하면 취소를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12월 말부터 지금까지 4명이 점심을 같이 먹고 있다. 같이 도시락을 먹으며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정보도 공유하며 하하 호호 즐겁게 밥을 먹는다. 오늘도 그렇게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R님이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했다며, 요새 24시간이 행복하다고 했다. 아니 어떤 메커니즘으로 24시간이나 행복하다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어떻게요?라고 물어봤다. 근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상했다. 다시 물어보니 ‘이 식사 시간이 행복하다‘는 거였다. 재미있는 건, 한 사람은 그 말 그대로 알아들었고, 나머지 둘은 24시간으로 알아들어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린 것이다. 그런 우리가 너무 웃겨 한참을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그 식사시간으로 행복감을 느끼다니. 뭔가 회사 생활에서의 팍팍함이 느껴져, 내가 다른 때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그 한 마디로 또 크게 웃었으니 되었다 싶었다. 내가 나의 장점을 모르던 시절, 나에게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 말해주신 분이 있었다. 그땐 잘 몰랐는데, 여러 회사들을 거치며 내가 좋은 사람들을 알아보는 눈이 있고, 웃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점차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게 너무나 나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는 능력이라는 것도. 24시간 행복하다는 건 꿈에서도 행복해야 한다는 건데, 어떤 능력으로도 가능할리 없다. 그래도 뻥뻥 큰소리를 내며 할 수 있다 외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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