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두 달 전 얼리버드로 사놓은 퓰리처상 사진전에 다녀왔다. H는 10년 전쯤 갔다 왔다 해서, J와 B랑 셋이서만 가기로 했다. 오래전 가봤던 기억으로 두부집인 백년옥에서 점심을 먹자 했는데,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아 줄을 서서 먹었다. 맛은 좋았으나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은 예감. 다음 달에 J의 사촌언니네 집에 놀러 가는 이야기를 하다, J와 B 둘 다, 여행 전날 설레서 잠을 잘 못 잔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귀여운 친구들. 아무래도 네 명 중엔 내가 제일 잠을 잘 자는 것 같다.
퓰리처상 사진전은 고흐 전시보다는 사람이 적은 편이었지만 꽤 북적였다. 오디오 가이드 때문인지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사진과 설명만 빠르게 읽으며 지나갔다. 퓰리처상은 언론과 예술 분야에 주는 상이라고 한다. 초반에는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분쟁 지역의 현실을 담아내는 사진에 상이 수여되어 강한 충격을 주는 사진들이 많았다. 암살 사건에서 칼을 찌르거나 총을 쏘기 바로 직전의 사진이라던가,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의 뒤에 앉은 독수리라던가, 물에서 아이 셋을 데리고 헤엄치는 엄마나 국경에서 최루탄을 피해 맨발인 아이 둘을 양손에 잡은 팔 두꺼운 엄마와 같은 모습들. 나중에는 특종뿐 아니라 특집 기사도 다루어 코로나 때 비닐을 사이에 두고 키스하는 노인 부부나, 인종 갈등이 있던 시기에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는 흑인과 백인 학생, 3위 했지만 1위를 한 것 같은 나이지리아 여자 계주팀의 모습 같은 사진도 있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기자들뿐만은 아니겠지만, 분쟁 지역에서 사진을 찍던 기자들은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은 듯했다. 어떤 사진은 죽음의 위기에 있는 기자의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사진에 찍힌 사람들도 모두 살아남은 것은 아니었다. 사진 한 장으로 세상을 구하거나, 또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화재 현장을 찍은 사진으로 소방 관련 대책을 고려하게 되었다거나, 보도 윤리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일은 있었다.
저녁엔 은평 달리기 모임 사람들과 약속이 있었다. 양장피가 맛있는 중국집이라고 해서 7시까지 갔는데, 불이 다 꺼져있었다. 일요일 휴무 였다. 아무도 확인 안 한 우리들.. 감자전 맛집이라는 쭈꾸미 집으로 바로 장소를 옮겼다. 5명 멤버 중에 3명이 현재 부상 중이었다. 부상을 당하지 않은 두 사람은 12월에 모두 성공했고, 부상 신고 전까지 성공하지 못했던 두 사람은 벌금을 냈다. 올해부터 목표 킬로수를 늘릴까 했는데, 겨울에는 무리하면 안 된다고 해 날이 풀리면 20킬로미터로 변경하려고 한다. 대식가들의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따로 들어가는 놀라운 배와, 서로 잘 들리지는 않지만 소통하고자 하는 강한 마음, 각자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하게 해주는 너그러움으로 한껏 웃는 시간이었다. 나는 절주 119(1가지 주종으로, 1차까지, 9시 전에 끝낸다)를 이야기했지만, 맥주만 마셔 1가지 주종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비웃음을 당하며 2차를 갔고 9시 40분에 모임을 마쳤다.
모처럼만에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일정이 가득한 주말이었다. 점심과 저녁을 모두 밖에서 먹었다. 작년에는 이런 날이 많았는데, 겨울이 되며 주말에 아무 것도 없는 날이 계속 있었다. 그래서 이번 주말이 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고, 많이 피곤하기도 했다. 신년엔 주말에 하루 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고, 좀 여유를 갖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번 주말엔 실패다. 그래도 모두 즐거운 시간이었다.
'2025년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2 게스트와 함께 달리기 (0) | 2025.01.23 |
---|---|
1/21 한가로운 벼락치기 (0) | 2025.01.21 |
1/20 사소하고 미묘한 기쁨 (0) | 2025.01.20 |
1/18 인연이 아닌가 봐 (0) | 2025.01.19 |
1/17 다리 위 부는 바람 (0) | 2025.01.18 |
1/16 작별하지 않는다 (0) | 2025.01.17 |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