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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았다. 단 한 번도 앞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이건 엄마 아빠의 유전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참 키가 자라야 할 시기에 잠을 자지 않았던 게 더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보통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자야 성장 호르몬이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가 가장 재미있을 때였다. 목이 돌아가도록 누워서 책을 읽기도 했고, 빌려온 만화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반복해서 읽기도 했으며, 주말의 명화를 놓치지 않고 챙겨봤다. 더 커서는 새벽에 PC통신으로 게임을 하며 전화 요금을 낭비하기도 했다.
그래도 새벽까지 깨어 있는 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새벽 2시가 된 어느 날, 나는 학교 괴담을 떠올렸다. 어느 학교마다, 과거에 공동묘지 혹은 정신병원이었던 곳에 학교가 지어졌다는 소문, 동상이 사람이 보지 않는 시간에 돌아다니거나 움직인다는 괴담이 있었다. 그런 학교의 비밀 100가지를 알면 죽는다는 이야기까지. 나는 기껏해야 7가지 정도만 알았기 때문에 죽을 일은 없다고 안심했지만, 새벽 2시에 세종대왕 동상이 책을 넘긴다는 것은 너무나 내 눈으로 목격하고 싶은 현상이었다. 당시 나는 집에서 학교가 너무 가까웠고, 집이 또 12층으로 높아 학교 운동장이 훤하게 보였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베란다로 가서 까치발을 하고 어두컴컴한 학교 운동장 가운데 있는 동상을 봤는데, 한치의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그걸 믿기 어려워 몸을 최대한 바깥으로 내밀어 몇 번을 살펴봤다.
이 짧은 에피소드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모든 걸 내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해야 하는 사람이다. 어떤 두려움도 호기심을 이길 수 없었다. 자극추구가 높고 위험회피가 낮은 사람. 내가 수학을 잘해서 이과로 갔더라면, 과학을 전공해 남극기지를 갔을 거다.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초등학교 3학년 때로 돌아가 수학익힘책을 버린 나에게, 책을 사주고 오고 싶다. 에에올에서처럼 이 분기가 나에게 다른 삶의 형태로 가는 기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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