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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책 모임이 있었다. 하나는 오래전에 사두고 읽지 않았던 '에이징 솔로'였다. 에이징 솔로는 인터뷰 모음집이었는데, 표지를 보고 생각한 것보다는 조금 건조한 책이었다. 표지는 에세이 같았는데 내용은 사회과학책과 같은 구성이었다.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더 있다는데, 이 책이 더 흥한 이유는 나이 들어서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에이징 솔로'라는 정체성으로 정의한 게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느낌의 책을 기대해서 그런지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몇 가지 공감 가는 부분과 새롭게 알게 된 부분들은 있었다.

 

먼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1인 가구가 33.4%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 29.3%보다 많다는 것이다. 또한 미혼율과 비혼에 대한 동의한다는 비율도 꽤 높은 비율이었다. 그리고 그 비율은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출생률이 국가의 주요 숙제로 떠오른 우리나라에서는 골치 아픈 일이겠지만, 나는 공감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어간다는 것이 좀 반갑게 느껴졌다. 그리고 에이징 솔로가 되는 것은, 어떤 강한 신념이나 의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어쩌다보니인 경우가 많아 자연스러운 사회의 흐름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에이징 솔로라고 하여, 1인 가구로 혼자 사는 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결혼에서 얻고자 하는 동거인의 역할은 누군가가 아플 때의 보호자 역할일 때가 많다.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또한, 멀쩡하게 사지로 밥 먹고 사는 것 말고 아플 때를 상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법적인 보호자는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헌신이 아닌 여러 명이 부담스럽지 않게 공동체 형태로 돌봄을 품앗이하는 사례가 소개 되어 꽤 흥미로웠다. 내 주변에 에이징 솔로가 많아 시도해 볼 법한 방식이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이제까지 에이징 솔로의 삶에서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은, 부모님을 부양하는 부분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에게 손 벌리기 싫어하고 지금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꾸려나가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시는 편이라 이런 부분은 전혀 생각해보진 못했다. 하지만 두 분 중 한 분이라도 건강이 좋지 못할 경우, 지금과 같은 삶을 살기는 어려울테고 누군가가 부양하는 것이 불가피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두 분 모두 건강하게만 사시길 바라는 것은 낙관적인 희망에 가깝기 때문에, 언젠가 다가올 미래라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 책은  작년에 읽었던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이다. 어슐러 르 귄의 작품 중, SF 모임에 소개하여 같이 읽고 싶은 책이었다. 문체가 읽기가 쉽지 않고, 내용도 어떻게 보면 좀 보기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었는데 그래도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읽은 것 같아 좋았다. 다시 읽어본 감상은, 다시 봐도 글을 너무 잘 쓰고, 또 생각보다 르 귄이 인류학자인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SF적인 상상력이 가미되었지만 불편한 현실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내용이고, 어떤 부분은 분노가 드러날 법도 했는데, 마치 인류학자가 새로운 종족의 문화를 관찰하듯 담담하게 묘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SF를 사고 실험으로 생각한다는 르 귄의 생각이 잘 드러났다.

 

이야기하며 재미있었던 부분은, 성과 이름에 대한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작품 내에서 노예로 살던 이의 성이 조합되는 방식이 '주인의 이름+자신을 키운 할머니의 이름+자신의 이름'이라는 데서 시작했다. 사실 한국은 결혼을 해서도 여자가 결혼 전 성을 유지하는 몇 안되는 나라인데, 그게 여성의 인권이 높아서는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조선시대에 소중화를 자칭했기 때문에, 중국을 따라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또, 조선시대에도 천민들은 성이 없었다고 한다. 근대화에 이르러 모두에게 성이 부여되었는데, 족보를 사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양반 성씨인 김이박씨가 지금 많은 이유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외에도 귀화하는 사람들처럼 임의로 자기 자신의 성을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최근에는 아빠의 성뿐 아니라 엄마의 성을 따를 수도 있게 되었는데, 그게 아이의 출생신고 시점이 아니라, 혼인신고할 때 미리 정해야 한다는 점이 매우 의아한 부분이었다. 재미있는 건 엄마의 성을 따르겠다고 했다가도 출생신고할 때 별도의 서류를 제출해 아빠의 성으로 바꿀 수 있는데, 아빠의 성을 따르기로 했다면 엄마의 성을 따를 수 없다고 한다.

 

외국의 경우에도 재미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아이슬란드의 경우 아버지의 이름에 '손'이나 '도티르'를 붙여 성을 만든다고 한다. '요한손' 같은 경우, 요한의 아들이라는 뜻일 거다. 인도의 시크교도는 성이 성별에 따라 붙여지는데, 남자는 모두 '싱' 여자는 모두 '카우르'라고 한다. 카스트 제도가 있던 인도에서 성씨에 따라 카스트가 드러나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이렇게 이름을 바꾼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 이름만 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왠지 가족이라고 하면 성으로 묶이게 마련이어서, 성씨가 없는 이름이 좀 낯설게 느껴지긴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사를 지내야 하고 대를 잇는 개념이 있어, 이름에서 성씨가 빠질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천민의 경우 이름만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주말에는 제주도에 다녀왔다. 올해 첫 제주도다. 회사의 전현직 동료들과 같이 다녀왔다. 기본적으로 모두 P성향이어서 여행에서 계획을 잘 짜지 않고 즉흥적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참 재미있게도, 마치 계획이라도 짠듯 시간을 딱딱 맞춰 여러 장소를 돌아다녔다. 그 시간을 맞추는 것도 거의 1~2분 전에 도착하는 식이어서 우리끼리 "어? 우리 J 아니야?"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J Like Tour를 2박 3일 동안 하였고, 저녁에도 늦게까지 수다를 떠느라 3~4시쯤에 자기 일쑤여서 수면 부족에 피로가 몹시 쌓였다. 그래도 어떤 J도 부럽지 않은 빡센 스케줄로 여행을 다녀왔고, 우리는 다음 여행지를 우도로 정하는 완벽한 J의 성향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사실 가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몸 편한 힐링 여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즐거운 여행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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