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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일기

12/4~12/10 계엄과 탄핵

나비사슴 2024. 12. 11. 17:58

12/3 밤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카톡이 올라왔다. 계엄이라니... 내가 알고 있는 그 계엄이 맞나? 하는 생각으로 뉴스를 찾아보았는데, 좀처럼 새로운 정보가 올라오지 않았다. 게다가 쓸데없이 오물풍선과 관련한 재난문자를 매일같이 보내더니, 계엄 상황이라면서 재난문자는 매우 잠잠했다. 그러다 계엄 포고령이 올라왔는데, 내용이 가관이었다. 사실 계엄 상황에서 국회가 가결하면 해제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으므로 국회를 저지하려는 것의 의미는 알지 못했지만, 전공의를 처단한다는 부분을 보고는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떼쓰는 중이란 걸 알았다. 하지만 계엄이 우리나라에서 가지는 의미, 그리고 권력자가 그 무기를 함부로 다루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파급력을 고려했을 때 상황은 몹시 심각했다. 특히 국회로 계엄군이 진입할 때는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다행히 계엄군을 막아낸 시민과 보좌관들, 그리고 담을 넘어서 신속하게 국회로 모인 국회의원 덕분에 계엄 해제가 되었고, 나는 안심하고 잠에 들었다. 하지만 2차 계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음에 잠을 설친 이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박근혜의 국정농단은 진위 여부를 캐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탄핵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경고용 계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윤석렬의 탄핵이 단번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사실 토요일에는 무난히 탄핵이 될 것으로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친구들과의 모임 후 즐거운 마음으로 여의도로 향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내가 여의도록 향하던 시간에 국민의힘에서 투표도 하지 않고 회의장을 나갔다는 뉴스를 봤다. 추측상 윤석렬을 지금 바로 탄핵을 시키면, 두 번이나 탄핵된 대통령을 낸 당이 될 뿐 아니라 이 분위기에 이끌려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시간을 조금 지연시키는 듯했다. 내가 정치로 먹고사는 정치인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자리에 놔두는 것이 어떤 것보다도 큰 위험 요소일 텐데, 이해가 가지 않는 그들의 당론.. 김건희 특별법 투표 이후에, 탄핵 투표 때는 자리에서 나갔다고 해서 국회의원들은 투표할 의무가 없는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자리를 떠난 이들은 설득의 여지가 없고, 마음을 바꿀 것 같지도 않긴 했지만 그래도 국회에 가보기로 했다. 재난문자로 여의도역과 국회의사당역은 무정차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버스라는 대안이 있긴 했지만, 시위 자체가 차도를 막을 것이기 때문에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찾다 보니 당산에서 걸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일단 당산역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출구는 정확하게 알고 나가야겠다 생각하며 지도 검색을 하는데 인터넷이 거의 터지지 않았다. 당산역에 사람이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국회에 사람이 많은 것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방향을 잃어 당황하던 와중에 잠깐 인터넷이 되며 길이 조회가 되었고, 혹시나 또 인터넷이 안될 수 있기 때문에 화면을 캡처해 두었다. 8번 출구에서 나가 1.6km 정도만 걸으면 되는 길이었다. 내가 국회로 향했을 때는 이미 탄핵안이 부결된 상태여서 돌아오는 사람도 꽤 있었다. 당산에서 여의도로 가는 길은 국회의사당의 후문 쪽이었다. 내가 도착한 시간에  후문에는 경찰 20명 정도가 국회로 오가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있었고, 시민들은 몇 명만 그 옆에 서 있었다. 국회 정문에서 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걸어가니 점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 전 박근혜 탄핵 때도 잠깐 시위 현장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양초를 이용했지만 지금은 응원봉이 대세였다. 색색깔의 응원봉이 있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탄핵이라는 글자를 커스터마이징해 붙인 초록색의 네모난 응원봉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NCT 응원봉이라 했다. 응원봉뿐 아니라 깃발들도 기발했는데, 전국깜고임보협회인가 하는 깃발을 보고, 정말 있는 단체인가 하고 적어두었다가 나중에 검색하니 그냥 만든 깃발이었다. 한국인은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을 포기 못하는 민족이다. 나중에 콘텐츠를 보니 내가 본 것 외에도 재미있는 깃발들이 많은 듯했다. 나는 준비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 빛나는 어떤 것도 들고 있지는 않았지만, 앞에서 주도하는 목소리에 따라 크게 구호를 외쳤다. 시위 현장에서는 인터넷이 전혀 되지 않아 상황을 알기 어려웠는데, 스피커를 통해 국민의힘에서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 세 의원이 투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때부터는 구호가 탄핵이 아니라 국민의힘 돌아와라였지만, 투표했다는 의원들의 숫자가 더 늘어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의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국회를 감싸자며 천천히 행진을 권유했는데, 그런 와중에 거의 국회 정문 바로 앞까지 가기도 했다. 그리고 당산역 방향으로 걸어 후문까지 가니, 그때는 그 앞에도 스피커가 설치되어 시위의 현장이 되어 있었다. 후문에서 탄핵을 열심히 외치다 당산역으로 다시 걸어갔고, 인터넷이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과 다음날의 일정 때문에 나의 탄핵 시위는 그렇게 짧게 끝났다.
 
그리고 화요일. 한강의 작품 읽기 모임의 첫 책, '소년이 온다' 책 모임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시의적절하게 계엄이 터지고, 노벨상을 받게 되었을까. 사실 소년이 온다는 예전에도 볼까 했지만 왠지 처참한 묘사를 보기 힘들 것 같아 뒤로 미뤘던 책이었다. 나는 광주의 5월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고 그 때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책에는 국민을 보살펴야 할 국가가 오히려 그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의 잔인함, 살아남은 자들이 가지는 왠지 모를 부채감,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의 트라우마,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가 그때에 있던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안 할 수가 없는데 탄핵 시위를 다녀온 나를 봐서는 내가 그렇게 앞장설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의 부채감을 나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므로, 아마도 이번 주에 탄핵 시위에 나가지 않을까 싶다. 내가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오래 후회하기는 싫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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