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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일기

12/19~12/25 치앙마이 여행

나비사슴 2024. 12. 31. 18:16

2018년에 홍콩에 간 이후로, 벌써 8년이 지났다. 그 이후 해외로 경기를 하러 나간 건 작년에 갔던 이탈리아 돌로미티뿐이었는데, 모든 시간들이 좋았던 기억뿐이라 올해는 꼭 해외 대회를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원래 가고 싶던 곳은 7월의 스웨덴이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로 갈 수 없게 되어, 대신 12월의 치앙마이를 기다려왔다. 대회 신청이 열리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얼리버드도 아닌 골든 엔트리로 신청했다. 대회는 20일~26일이 공식 일정으로 크리스마스를 껴서 4일 정도를 휴가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금요일 출발 비행기와 목요일 출발 비행기의 금액 차이가 10만원 정도여서, 조금 무리한 일정이지만 목요일인 19일에 출발하고 26일 새벽에 한국에 도착해 바로 출근하는 비행기로 예약해두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지런히 달려서 체력을 열심히 끌어올렸다. 심지어 출발하는 날인 19일에도 아침 달리기를 했다. 완벽하게 준비했다 볼 수는 없지만,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다렸다.
 
대회도 대회지만, 치앙마이라는 여행지에 대한 기대도 컸다. 방콕에 이은 태국 제2의 도시이자,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올해 초에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왔다는 친구는 실망이 크다고 했고, 대회 2주 전에 가서 거의 특파원처럼 맛집 정보를 물어다 준 친구는 더운 날씨를 제외하고는 만족스럽다고 했다.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을 갖고 먹거나 놀 곳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특히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쉬는 날에 무엇을 할지 고민이 많았다. 치앙마이 제일의 사원인 도이수텝에 갈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까, 아님 더우니까 실내에서 하는 무에타이 원데이 클래스를 들을까, 한 바퀴를 돌면 6킬로가 넘는다는 해자 옆 길을 달릴까 온갖 상상을 했다. 그렇게 온갖 곳을 구글 맵에 저장을 했더니 가볼 곳이 40곳이 넘었다. 일주일 가는 여행인데, 한 달 살기를 하는 마음가짐이었다.
 
대회에 참가하는 우리 클럽 멤버는 모두 9명이지만 각자 비행기를 따로 예약했다. 여행은 같이 가는 걸 좋아하지만, 비행기는 따로 타는 걸 좋아한다. 한국에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책을 읽거나 영어 어플로 공부하기를 좋아하는데, 이번엔 책 두 권과 미리 다운로드 받아두었던 드라마를 봤다. 그렇게 6시간 뒤, 한 달 살기로 먼저 도착한 친구를 제외하면 내가 가장 먼저 공항에 도착했다. 볼트 는 한국에서 카드 등록에 실패했었는데, 이심을 활성화하고 나니 바로 해결되었다. 좌측통행인 태국에 잠시 당황했지만, 볼트를 타고 호텔까지 잘 도착했고 미리 남자친구와 치앙마이를 즐기고 있던 내 룸메이트인 K를 만나 야시장에서 저녁을 먹은 후, 잠에 들었다.

치앙마이 대학, 앙 깨우 저수지

 
본격적인 대회 일정의 시작은 토요일 부터여서, 금요일엔 자유 시간이었다. 첫 날의 스케줄은 꽤나 알찼다. 치앙마이 대학 달리기 ▶ Sia Fish Noodles (비추) ▶ 태국 국민 밀크티 차트라뮤 (무뎅 리유저블 컵 겟) ▶ 님만해민 스타일 비싼 소품샵 구경 ▶ 찰리 타이티 에서 차 구매 위치안부리 로스트치킨에서 매운 쏨땀 먹으며 눈물쇼 구경하고 레오 맥주 마시기 ▶ 신선한 두리안 맛보기 ▶ 앞뒤로 묶는 태국 바지 단체 구매 ▶ 망고 스티키 라이스와 기타 열대과일 구매 ▶ 대회 접수 ▶ 숙소에서 과일 섭취 ▶ 아누산 야시장에서 팟타이,쏨땀,카파오무쌈 등등 먹기. 아침 7시에 나가 해가 져서 들어오는 일정으로, 사실 첫 날 이 일정으로 우리는 치앙마이에서 보내는 일주일을 아주 짧게 체험했다.
 
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서 일정은 새벽 5시부터 시작했다. 아마도 더운 날씨 때문이겠지. 8시~10시 즈음에 경기를 뛰고 돌아와서는 근처 식당이나 야시장에서 밥을 먹고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아이쇼핑을 열심히 하다 돌아왔다. 24일 쉬는 날에도 치앙마이 대학에서 달리기를 하고, 님만해민에 가서 또 로스트치킨을 먹고, 타이티를 마시고, 아이쇼핑을 하다 돌아왔다. 40개의 즐겨찾기가 무색하도록 첫날과 동일한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주일간 치앙마이를 돌아다닌 기록은 아래와 같다.
 
1. 1일 1타이티 : 싸게는 45바트에서 70바트까지 하는 타이티를 하루도 빠짐 없이 먹었다.
2. 태국의 김치 쏨땀 :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먹었고, 이제 맛있는 쏨땀을 논할 수 있게 되었다. 땅콩 버터와 땅콩이 많이 들어가고 매운 쏨땀이 맛있다. 위치안부리 로스트치킨 쏨땀(맵지 않게)이 제일이다.
3. 맥주는 레오 : 창, 싱하 맥주를 모두 마셔보았지만, 레오가 제일 맛있었다. 개성이 강하달까?
4. 바지 쇼핑 : 기본 코끼리 바지는 100바트, 예쁘고 특이한 무늬의 다른 바지들은 150~250바트
5. 야시장 : 숙소 바로 앞에 야시장이 있었는데, 그중 아누산은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해서, 물건들의 가격과 시장의 레이아웃을 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다. 유명한 썬데이 마켓은 너무 커서 다 돌아보지 못했다.
6. 과일 : 망고가 제일 맛있었지만, 다른 과일들도 다양하게 시도해봤다. 두리안은 다시 시도하지 못했다.
7. 빅씨마트 : 첫 날에는 못갔지만, 다음날부터 출근 도장을 매일 찍었다. 태국에서 김이 유행한다는 사실도 알았고, 타마린드라는 새로운 콩과 식물도 알게 되었다.
8. 세탁 서비스 : 1kg에 40바트로 세탁하고 건조 후 예쁘게 접어서 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더 오래 있었다면 여러 번 이용했을 듯.
 
치앙마이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인 대회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달리기는 열심히 했지만서도 스프린트에서 초반에 너무 헤매고, 가지 않아야 할 곳과 갈 수 있는 곳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가장 빠른 루트를 선택하지 못했다. 결국 7등 정도로 마무리하게 되어 너무 아쉬웠다. 두 번째날 미들도, 제대로 직진을 하지 못해 옆으로 빠지거나 헤매서 쓸데 없는 데서 시간을 많이 들였다. 1시간 이내에 들어오고 싶었는데 1시간이 넘어 도착했고 5등이었다. 3등 안에 한번쯤은 들고 싶었는데, 한 번도 들지 못한 마음과 마지막이니 헤매지 말자는 마음으로 두 번째 미들은 욕심을 버리고 길 위주로 뛰어 다녔다. 물론 이 역시도 실수가 몇 군데 있어서 원하는 만큼의 성과는 얻지 못하고 5등으로 마무리했다. 국가대표로 나간 것도 아니고, 21세 이상 여자 선수들과 겨루는 클래스에 참가한 것이어서 순위에 들고 싶다는 욕심을 조금 부렸다. 하지만 결과를 보고 그저 욕심이었을까 싶었는데 갑자기 시상식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3경기 총 시간 합계에서 순위 안에 든 것이다. 기록이 좋은 선수들이 둘째날이나 셋째날 실격이 있어 내가 순위에 오른 듯했다. 당일엔 2등이라고 상을 받았는데, 나중에 기록을 확인하니 3등이긴 했다. 그래도 되든 안되든 열심히 뛰었던 순간들이 전혀 의미없지는 않았구나 생각이 들어 매우 기뻤다.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그날 저녁 9시 40분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바로 출근하는 힘든 일정이지만 소기의 성과가 있어 하나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나라에서 좋아하는 친구들과 한껏 웃으며 보냈던 시간들이 내 기억에 차곡차곡 쌓였고, 이 기억들이 내년에 또 해외로 나가게 되는 동력이 될 것 같다. 벌써 7월에 있는 핀란드 대회를 검색하며 미래의 시간을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대회가 아니면 해외를 잘 나가지 않으므로 치앙마이를 언제 다시 가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을 다시 읽게 되는 어느 날에, 치앙마이에서 느낀 즐거운 기분을 다시 되살릴 수 있기를. 큰 사건은 없었지만 소소하게 웃고 즐겼던 그 시간들이 내가 살아가는 데 작은 발판들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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