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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지막으로 수요일마다 연대 트랙에서 뛰는 달리기 모임에 다녀왔다. 정산을 해보니 올해 4월에 시작해 총 24번을 참석했다. 1년을 52주 정도로 보면 약 반 정도는 참석한 셈이다. 처음엔 고관절이 회복되고 나서 슬슬 뛰어볼까 싶어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고 꾸준히 무언가를 해낸다는 성취감도 있어 되도록이면 시간을 빼놓고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요일엔 주로 인터벌을 하고, 웜업과 쿨다운까지 다 뛰고 나면 10km 정도가 된다. 계속 이렇게 뛰다 보니 이제 5km 뛰는 것은 쉽게 느껴진다. 10km를 편하게 뛰려면, 20km를 뛰면 된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셈.. 이렇게 달리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가민도 사게 되었고, 가민으로 바디 배터리를 체크하면서 조금 더 휴식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며 선순환이 되고 있다. 아마 내년에도 수요일마다 달리기를 하러 가게 될 듯하다.
 
달리기에 대한 욕심을 부리며, 내년엔 본격적으로 아침 달리기를 계획하고 있다. 아침이니 부담스럽지 않게 3~4km 정도만 조깅 수준으로 달릴 예정이다. 오늘은 6시 반에 Y언니와 응암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원래는 월요일부터 하려고 했는데, 월요일에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해서 약속을 잊고 말았다. 오늘은 만남에 성공했고, 언니는 지방에 가야 하는 일정 때문에 같이 뛰진 못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아침 달리기에 성공했다. 일어나야 하는 시간보다 조금 일찍 눈이 떠진 덕에 간단한 스트레칭, 스쿼트, 팔 굽혀 펴기도 성공! 이렇게 아침 달리기를 꾸준히 하게 되면 내년 달리기 목표는 주 15km에서 20km 정도로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아침에 달리기를 하면서 피크민들과 꽃을 심으며 산책도 했다. 피크민 블룸을 일주일 전부터 시작해, 이제 어느덧 레벨이 19가 되었다. 예전에 깔았다가 지우기도 했고, 친구가 초대를 보냈지만 들여다보지도 않다가, 미리 치앙마이에 가서 특파원의 역할을 하고 있는 S님이 치앙마이에서 엽서를 모은다는 소리를 듣고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피크민 캐릭터가 요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산책할 때 졸졸 따라다니고, 탐험 떠날 때 잘 가라고 인사도 나누고 하다 보니 정이 들어버렸다. 요즘엔 피크민들을 부화시키고 밀접도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걷는다. 하루에 8 천보를 걸으면 200원씩 주는 손목닥터는 귀찮아서 안 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피크민들을 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추위에도 점심시간에 산책을 나가고 있다. 하루에 만 보 이상씩 걷게 되는 매직. 역시 세상은 귀여움이 이기는 걸까. 주위에 적극적으로 피크민 블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혹시나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친구를 맺고 있다. 언제 버섯 토벌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지 모르니 말이다. (혹시 시작하실 분은 초대코드 : JNOQYUBHB)
 
피크민 블룸을 하며 많이 걷게 되는 것뿐 아니라, 일상의 로그를 자연스럽게 남길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알림을 해두면 정해진 시간에 하루 걸음과 꽃 심기 정산을하고, 하루동안 찍었던 사진을 추가해 라이프 로그를 저장할 수 있다. 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 편이라 처음엔 추가할만한 게 없었지만, 이젠 의식적으로 사진을 찍으려 노력한다. 가끔은 이렇게 찍은 사진의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피크민 화분을 얻을 때가 있다. 그러면 그 피크민에 사진이 붙어있어, 볼 때마다 그 순간이 생각나곤 한다. 사진을 이용하는 건 이것뿐만이 아니다. 피크민 블룸의 엽서 시스템은 같은 회사에서 만든 포켓몬고의 체육관 신청 사진을 기반으로 했다고 들었다. 엽서가 될 것을 고려하고 찍은 것이 아니기에, 모두가 예쁜 풍경 사진이 아니다. 그게 묘하게 이 엽서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엽서를 보며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점은 우리 주변에 교회, 경로당, 놀이터, 벽화, 소소한 장식물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곳을 한번 더 살펴보며 산책할 수 있다는 점이 이 게임을 하며 얻는 소소한 재미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의 투표가 있던 토요일, 아침에 봉산과 앵봉산을 다녀오니 조금 피곤해 낮잠을 자고 2시 일어났다. 사실 지난주 일요일에 수원에서 자동차 뒷바퀴 두 개에 공기압이 낮다는 경고성 알림이 떴었다. 동생이 이 알림이 뜨고 얼마 되지 않아 차가 멈췄던 경험을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 차가 멈춰 보험사를 불러본 경험이 없어, 왠지 겁이 났다. 검색해 보니 주유소에서 공기압을 넣을 수 있다고 해, 바로 주유소에 들렀으나 그 주유소에는 공기압을 넣는 기계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주유소 주인아저씨가 보기에 타이어 상태가 서울까지는 갈만하다고 말해주어 불안한 마음을 안고 조심히 서울로 왔다. 하지만 주중에는 시간을 낼 수 없어 공기압을 넣을 엄두를 못 내다, 토요일에 자고 일어난 후에 공기압을 넣는 방법에 대해 검색했다. 그런데 요즘에 나오는 차에는 타이어 공기압을 넣는 키트가 있다는 게 아닌가. 왠지 키트가 들어있는 가방을 내 차에서 본 듯도 했다. 얼른 차키를 들고 내려가 확인하니 정말 키트가 있었다. 신이 나서 그 기계를 이용해 양쪽 타이어에 적정 압력보다 1 정도씩 높게 공기를 넣었고, 경고성 알림이 사라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뭔가를 해냈다는 자신감을 가진 채 여의도로 향했다. 3시가 좀 넘은 시각, 지난주 토요일과 똑같이 당산역을 통해서 가기로 했다. 알고 있는 길이기도 하고, 다른 경로로 가서 차디찬 강바람이 부는 한강 다리를 혼자 건널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여의도로 넘어가는 다리 가까이 가자, 엄청난 줄이 눈 앞에 있었다. 사람이 많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다리를 건너기 전부터 줄을 서게 될 줄은 몰랐다. 내 앞에는 유아차를 가져온 부부도 있었고,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 두 딸을 데리고 온 가족도 있었다. 친구들을 중간에 만나 대열에 합류하는 십 대 여학생들도 있었고, 전에는 많이 보지 못했던 혼자 온 20~30대 남자도 간혹 보였다. 지나가던 한 시민은 유아차를 끌고 있는 부부에게, 좀 더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중에 보니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그걸 알려준 게 아닌가 싶다. 내내 줄을 서서 기다려 마침내 다리 위에 올랐을 때는 이미 4시가 넘어 있었다. 굉장히 느린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고, 겨우 다리를 내려와 국회 후문이 보일락 말락 하는 곳에 서있을 때 멀리서 환호성이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라이브로 영상을 보고 있던 앞뒤의 사람들이 됐다!! 는 소리를 질렀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정보를 알 수 없었던 나와 몇몇 사람들은 그 소리를 통해 가결 소식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결이 되고 나서 국회 앞에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플레이되었다고 한다. 그 안에 있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그 길가에서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도 안심이 되었는데.
 
가결이 되고나서 현장에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 국회 앞까지 인파를 거슬러 갔다. 마치 콘서트처럼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노래를 소개하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 탄핵 가결로  우리는 이제 국회를 넘어 다음 레벨로 넘어가야 한다 → 넥스트 레벨 (aespa)
* 오늘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갔다. →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day6)
* 대통령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들었다 → 이유 같지 않은 이유 (박미경)
전체 가사는 모르지만 워낙 유명한 노래들이라 아는 부분은 신나게 따라 불렀다. 이게 바로 탄핵콘서트지. 큰 소리로 노래와 구호를 따라 외치다 야당의 각 대표와 대리인 5명이 나와 한 마디씩 하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향했다. 몸은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했고, 같이 산책한 피크민들도 국회 나들이를 나와 신나 보였다. 나중에 트위터(현 X)를 보니 어떤 피크민 유저들은 국회 곳곳에 국화를 심었고, 또 국회는 아니지만 어느 공터에 꽃을 심어 '탄핵' 글자를 만든 사람이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바라던 것이 이루어져 다행인 날이었다.
 
일요일엔 작년 1월 이후에 오랜만에 미용실 예약을 잡았다. 처음엔 시간이 없어 미용실에 가지 않았는데, 뿌리 염색을 해야 할 시점이 되었을 즈음 재정 긴축의 문제로 앞으로 염색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미용실에 가지 않았더니, 머리카락이 거지존을 넘어 어깨보다 더 아래로 길어졌다. 염색했던 머리를 모두 잘라내도 되겠다는 시점에서 미용실에 가려고 했는데, 치앙마이를 가기 전에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아침 10시 반에 예약했다. 시간 맞춰 미용실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알고 보니 계엄령이 터지고 나서 예약이 확 줄었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의 위기가 새삼 와닿았다. 디자이너가 고양이 집사라, 소소하게 고양이 토크를 하다 보니 어느새 머리가 싹둑싹둑 잘려 단발이 되었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마지막 모습을 보니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아직 염색한 머리가 조금 남아있긴 한데, 그건 내년 즈음에 정리될 것이다.
 
오후엔 연말정산을 하며 송년회를 하기로 한 모임에 갔다. 급하게 연말정산한 것을 정리해 갔는데, 한 명이 급한 일이 생겨 오지 못하게 되어 그냥 수다회로 보내기로 했다. 3시간 정도 공간을 대여했는데, 누워있을 수도 있고 벽 한쪽에 크게 영상을 틀어놓을 수도 있어 매우 편했다. 닭강정을 시켜 먹으며 셋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데, 3시간이 매우 짧게 느껴졌다. 이야기거리가 없을까봐 K님이 대화 카드같은 걸 들고 왔는데, 전혀 필요가 없었다. 다양한 주제 중에, 오래 살고 싶어하지 않고 적정한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싶어하는 냉소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게 기억에 남는다. 우리 셋은 물론이고, N님은 주변의 친구들이 대부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나는 최근에 이 주제에 대해 생각했던 내용과, 동생에게 이야기했을 때 뜨악했던 반응을 공유했고 다들 그 부분을 공감해주었다. 또 지금은 살아있으니 마음 편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정작 죽음이 우리 앞에 다가왔을 때는 그걸 피하려 할 게 분명하다 이야기하니, 큰 수술을 했던 N님과 큰 병으로 오해한적이 있던 K님이 정말 그랬다는 경험담을 나눠주었다. N님과 나는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는데, N님이 보기에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오래 살고 싶어하는 타입처럼 보였다고 한다. 나와 오래 알고 지낸 K님은 나는 그런 양면성이 있는 편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예전인 이런 양면성 중에 하나만 나의 모습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남들에게 보이는 이런 의외성이 내 매력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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