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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보다 그것을 훨씬 빠르게 잘 해낸다고들 한다.
내가 알게 된 첫 재능은 달리기였다. 작은 마을의 학교였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되지만, 단 한 번도 책상 앞줄을 놓치지 않았던 나는 초등학교 내내 우리 학년에서 제일 잘 달리는 아이였다. 마찬가지로 키가 크지 않았음에도 고등학교 때까지 달리기 선수였다던 아빠를 닮아서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
그다음에 알게 된 재능은 공부였다. 사실 나의 불성실함은 이 재능에서 비롯된 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 단 한 번도 시험기간이 언제인지 몰랐다. 평소처럼 학교에 갔는데, 그날이 시험기간인적도 있었다. 별수 없이 시험은 평소 실력대로만 풀었다. 그래도 상위권을 유지했다. 최상위권을 노린 것도 아니었으므로 딱히 더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이 재능은 어릴 때부터 거의 먹는 수준으로 읽어 온 책 덕분이었던 것 같다. 아이큐 테스트의 무용을 논하며, 문제 독해력을 언급하던 글이 있었다. 그 문제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개념을 모르는 게 아니라, 문제 자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어 공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음악 쪽에도 아주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약간의 재능이 있었다. 피아노도 선생님이 진로를 이야기할 정도로 꽤 쳤다. 피아노 선생님은 달리기 훈련을 하고 와서는 너무 피로해한다며 한 가지만 집중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초등학교 때는 목소리가 좋다며, 음악시간에 대표로 노래를 시켰다. 중학교 때는 중창단으로 대회를 나가기도 했다. 교회 합창단에선 소프라노였지만, 알토로 불렀을 때도 안정적이어서 학교에서는 알토로 활동했다.
보통은 공부를 잘하면 운동을 못하고, 또 운동을 잘하면 음악을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저것 다 잘하는 나는 좀 많이 뛰어난 아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마을에 있어서 가능한 생각이었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처럼, 나는 커가면서 조금씩 큰 세계로 나아갔다. 근처 학교로 가면 해외도 보내주고, 이것저것 지원도 해준다는 유혹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지역의 고등학교로 갔다. 인재를 유치하러 우리 중학교에 왔던 집 근처 고등학교의 선생님은, 거기서는 대부분 잘해봐야 중위권 정도를 유지할 뿐이라며 악담 아닌 악담을 남겼다. 1학년 때는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또 다른 내 재능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그룹에서 확실히 중간 이상은 하는 재능이 있었다. 타 지역에서 온 아이들은 기숙사에서 살 수 있었다. 1학년 때 나는 15개의 2층 침대가 있는 방에서 살았다. 30명 중에 누군가는 분명 코를 골거나 이를 간다. 기숙사 입소 후 일주일간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는 친구도 있었다. 10명 방은 해당 지역에 사는 전교의 순위권 친구들이나, 3학년 언니들이 쓰는 방이었다. 2학년 때는 타 지역에서 온 친구들 중에 성적이 괜찮은 아이들을 10명 선발했고, 나는 거기에 속했다. 1학년 때 야자시간에 스도쿠나 네모네모로직을 하거나, 라디오를 들었지만 그래도 그때쯤엔 중위권 이상은 하게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학교에서 알게 됐다. 세상엔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운동도 잘하는 아이가 많았다. 내가 가진 재능은 조금 보잘것없었고, 내가 이제까지 잘한다고 생각했던 건 우물 안 개구리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다행인 건 내가 잘난 나에 취하긴 했어도, 그것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고3 때 겨우, 노력이라는 걸 해봤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하는 일을 그때 처음으로 해봤고 나름의 성과를 얻었다. 삶에 불성실함이 배어있어 내신 점수는 여전히 꽝이었지만, 수능은 좀 달랐다.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우리 반 1등을 수능에서는 내가 더 앞섰다. 그 친구가 유난히 못했기도 했지만, 내가 잘한 것도 있었다. 난생처음 노력해서 얻은 결과여서 뿌듯했지만, 다시는 이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체로 원하는 것은 얻었고,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멘탈이 있었다. 그것 말고도 다른 것으로 대체해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처음으로 닥친 시련은 논문이었다.
대학원 입학은 쉬웠다. 워낙에 점수가 엉망진창이어서, 면접관이 성적표를 보곤 도서관 알바를 하느라 공부를 못했느냐는 질문을 할 정도였지만 해당 학문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대학원 3군데에 모두 합격했었다. 딱히 면접 태도가 좋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스토리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오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매력을 느껴서 그 학문을 공부해보고 싶었다는 진솔함이 점수를 얻지 않았나 싶다.
석사 학위 논문을 보면, 솔직히 한숨이 나오는 것도 있다. 온갖 논문의 짜깁기가 눈에 보여 이런 사람들 때문에 대학원 학위의 무용론이 나오는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훌륭한 논문을 쓰고 싶었다. 석사 학위 논문은 내용은 중요하지 않고, 논문을 쓰는 법을 배우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나는 별것도 아닌 내용으로 논문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에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쉽지 않은 주제를 정했고, 참고할 논문이 많지 않아 외국 논문을 읽어야 했는데, 그걸 진득하게 읽어나갈 성실함도 없었다. 여차저차 1차 심사까지는 갔지만, 그 내용을 담은 글 자체가 부족함을 지적받고 더 나아갈 동력을 잃었다.
어느 정도를 포기하고 타협해, 쉬운 주제를 정해 그럭저럭한 논문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이제와 보니 이것 역시 내가 가진 탁월함을 평가하는 재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재능이 있다. 이 재능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나도 모르게 오랜 세월 많은 작품을 가리지 않고 보며 갈고닦아와 아주 날카롭게 벼려진 능력이 되었다는 거다. 좋은 작품과 잘 팔리는 작품이 다르기 때문에, 직업적으로 쓸모는 없다. 어쩌면 취향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함과 별개로 잘 만든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걸 보면, 이건 재능이라 해야 한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었던 것도 그런 것을 깨닫는 과정이 즐거웠던 게 아닐까.
최근 대만의 작가 천쉐의 [오직 쓰기 위하여]라는 책에서 ‘눈이 높은 것은 좋은 일이다 ‘라는 말을 보고 작은 위로를 받았다.
물론 눈이 낮으면 낮은 대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때 나는 대학원을 졸업해, 지금과 다른 일을 하면서 조금은 안정적이고 일반적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평행세계의 내가 눈이 낮을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계기로 눈이 낮아진 나는 그런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눈이 높은 나는 비록 내 논문이지만 낮은 퀄리티에 만족할 수 없어 쓰기를 포기했다. 그게 내 삶의 궤적을 매우 복잡하고, 불안정하고,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 그 높은 기준이 없었다면 무미건조했을지도 모른다고, 최근 몇 개의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높은 수준의 작품을 보며 얻는 희열이 내게 포기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라는 걸. 그리고 이걸 포기하는 건, 나의 가장 큰 부분을 도려내야 하기에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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