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이태원에서 밥을 먹은 대학동기 생일 모임. 다들 바쁘다 보니 3명의 생일을 한꺼번에 축하하는 자리로 모였다. 브런치를 맛있게 먹고, 지난번에 갔던 카페를 또 운명처럼 들렸다. 어제 너무 힘들었던 터라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날씨가 좋았고 우리가 오래 함께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화를 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이제 헤어지려고 하는데, J가 근처 리움에 들른다고 했다. 최근에 미술관에 다녀온 지도 오래되었고 해서 나도 같이 가자고 나섰다. 스웜을 찍어보니 거의 12년 전에 아니쉬 카푸어전을 본 게 마지막 방문이었다. 이번에 하는 기획전은 필립 파레 노란 현대미술작가라고 했다. 어떤 기본 지식도 없이 그냥 무작정 가보겠다고 했는데, 전시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좀 놀랐다. 리움..
드디어 선재 업고 튀어를 시작했다. 커뮤니티 반응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의 강한 추천이 있었던 드라마. 최애를 살리기 위해 타임슬립을 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웹소설 원작에 또 타임슬립? 또 덕후? 이런 느낌이 있긴 하지만 반응이 심상치 않아 빨리 봐야겠단 생각을 했었다. 김혜윤이야 스카이캐슬의 예서부터 인정받았고,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주도적으로 극을 이끌어갈 수 있음을 증명해서 믿고 볼 수 있었다. 다만, 변우석은 청춘기록에서 봤을 때 매우 어색했고, 그 뒤에 인기를 끌었던 힘쎈여자 강남순의 류시오를 보지 못해 약간 못 미더운 상태였다. 하지만 작가가 각색을 하며 변우석을 수영선수로 설정한 게, 피지컬적으로 너무나 잘 어울려 감탄했다. 그냥 아이돌 연습생이라고 하는 것보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가..
2019년에 리디에서 어슐러 르 귄 걸작선 세트를 구입했다. 지금 보니 7만 원이 넘는데, 그때도 비슷한 가격이었던 것 같다. 사실 어떤 작가인지도 몰랐다. 어스시의 마법사라는 유명한 책을 쓴 작가,라는 정도밖에 알지는 못했다. 그마저도 읽어본 적은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샀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산 것과 이유는 비슷할 것이다. 사두면 언젠가 읽겠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기한이 없다면 틀릴 수도 있었던 그 생각은 오늘 참이 되었다. 거의 5년이 다 되어 전권을 다 읽었다. 이번에 전권을 다 읽으며 알게 된 것. 내가 몰랐던 것뿐이지, 어슐러 르 귄은 아주 대단한 작가였다. SF와 판타지를 가리지 않고 온갖 상을 다 휩쓸었고, 젊었을 때뿐 아니라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열심히 작품활동을..
동생이 연프를 보기 시작했다.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권유해서 보기 시작했다는데, 솔로지옥을 처음으로 보고 재미 들렸나 보다. 다른 연프가 뭐가 있냐 물어보기에 환승연애를 권해주었는데, 솔로지옥 같은 화끈함이 없어 초반에 우는 장면이 나오자 바로 꺼버렸다. 환승연애 제작진의 새로운 연프인 연애남매도 마찬가지로 느린 흐름의 연출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사회실험에 가까워 연프라는 정의에서는 좀 벗어나있는, 나는솔로를 추천해 주었다. 나는 보지 않은 프로그램이지만 16기는 워낙에 파급력이 대단했어서, 그것부터 권해주었는데 처음부터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일단 솔로지옥과 비교해서 봤을 때 나오는 인물들이 매우 현실적이고, 대본 느낌이 없어서 좋다고 한다. 게다가 돌싱 특집이었다 보니, 남녀 간에 내외하..
스포일러 주의!먼 미래에 죽음이 극복된 세계, 그렇지만 출산은 계속된다. 늘어나는 인구를 모두 부양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이중 일정 비율의 사람들은 현재처럼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수확자 세계에서는 썬더헤드라는 인공지능이 모든 시스템을 관리하지만, 죽음 시스템만은 인간에게 일임한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직업으로 살아야 한다면 나는 그 길을 선택할까? 수확자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여러 수확자 중 대표격인 패러데이, 고다드, 퀴리 중 어떤 수확자에게 내 목숨을 맡기고 싶은가?일단 그 세계에 수확자가 아닌 일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재미있을 것 같다. 수확되지 않고 죽는 경우에는 몇 번이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는 세계. 아픈 몸 걱정도 없고, 굶어..
내가 스무 살 때 처음 산 만화책은 원피스였다. 30권까지는 모았던 것 같은데, 나는 원피스의 팬은 아니어서 중간에 헐값으로 친구에게 팔아버렸다. 그 뒤로 참 많은 만화책들을 샀지만, 계속 동향을 살피며 사는 만화책은 히스토리에, 3월의 라이온, 크게 휘두르며, 칼바니아 이야기 정도다. E북으로 모으는 건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 우주형제, 헌터x헌터다. 생각해 보니 다 일본 작가의 작품이고, 오래 연재한 작품뿐이다. 연재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새로 나오면 무조건 구매하는 작가도 있다. Go 히로미 Go와 어떻게 좀 안될까요를 쓴 아소우 미코토는 족족 구매한다. 이렇게 온통 일본 만화책이 내 만화책장을 가득 채웠는데, 국내 작가의 책이 계속 쌓이고 있는 책장 하나가 있다. 바로 권교정 작가, 일명 교님..
이번 SF모임에선 수확자를 읽기로 했다. 처음 이 책에 대해 언급한 건 S님이었다. 세 권을 모두 다 읽고, 재미있는 책이라며 추천해 준 것이다. 그 후에 다른 책모임을 하는 Y님에게서도 요새 이 책이 재미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전해 들었다. 그렇게 기대가 부풀어 가다 마침 SF모임에서 이 책이 선정되었다. 3부작의 경우, 첫 모임에서 1권을 읽지 못하면 따라오기가 힘들어 첫 모임에 나온 사람들끼리 모임을 계속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우려 때문에 삼부작은 다음 모임을 할지 안 할지 1권을 읽고 판단하자고 보류하는 편이다. 그런데 수확자를 읽은 사람들은 대부분, 다음 모임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의견들을 내놓아 기대가 컸다. 수확자는 죽음을 정복한 세계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더 이상 노화로 인한 죽음을 ..
한동안 멈췄던 더 커뮤니티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콘텐츠를 빨리감기 혹은 건너뛰기로 잘 보지 않는 편이고, 다른 콘텐츠에 비해 집중도도 높아서 시간 내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한 편당 1시간으로 딱 잘리는 공중파 콘텐츠와 달리, OTT오리지널이라 편당 시간이 1시간에서 2시간까지 유동적이었다. 하루에 한 시간만 내어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어서, 그냥 쭉 몰아봤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회 하나만 남겨두었다. 보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신기한 건 다른 서바이벌 콘텐츠보다 ‘내가 저기 있다면 어땠을까?’를 더 많이 생각한 거였다. 나는 저기서 어느 정도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나는 누군가의 두 얼굴, 그리고 강한 욕망을 직관했을 때 얼굴에 혐오를 비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가 면제권을 가졌다면..
성이 레욘(사자)인 형제가 있다. 동생인 칼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아팠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지도 못하고, 늘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형인 요나탄은, 둘이 같이 연애형제에 나가도 형제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다른 모습이다. 잘 생기고 키가 크다. 그런데 동생에게도 지극해 어느 것 하나 단점을 찾기가 힘들다. 칼에게는 그런 형이 너무 부럽고, 또 한편으론 자랑스럽다. 침대에만 있는 칼은 늘 죽음이 가까이 있는 것 같다. 요나탄은 칼을 안심시키려 낭기열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죽음 뒤에 그들은 낭기열라에서 살아갈 수 있고, 또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그런데 형이 낭기열라에 먼저 가버렸다. 집에 불이 났는데, 아픈 칼을 구하고 요나탄이 죽은 것이다. 동생을 구한 용감함을 기리기 위해, 성인 레욘(사자)을..
연애프로그램에 빠져 시청한 것은 하트시그널뿐인 나. 참가자들의 작은 몸짓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메기라는 신박한 개념을 가져와 프로그램을 흔든 재미 요소들 때문에 시즌2까지는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그 이후 참가자들의 논란이나, 회사를 잘 다니던 사람이 연기를 하는 등의 행보를 보며 좋지 않은 편견이 생겨 그 뒤로는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래도 엄청 핫했던 나는솔로 16기나, 환승연애2의 두 커플은 클립으로 보며 이슈를 따라가기는 했다. 나는솔로는 설레는 연애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회 실험 프로그램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데, 16기는 어떻게 루머가 생산되는지를 잘 보여주어 매우 흥미로웠다. 환승연애2는 자신의 전 연인과 연애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미친 콘셉트이다. 그런데 그 콘셉트가 이전의 미련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