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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3/28 교의 리얼토크를 영업해 보자

나비사슴 2024. 3. 29. 14:14


내가 스무 살 때 처음 산 만화책은 원피스였다. 30권까지는 모았던 것 같은데, 나는 원피스의 팬은 아니어서 중간에 헐값으로 친구에게 팔아버렸다. 그 뒤로 참 많은 만화책들을 샀지만, 계속 동향을 살피며 사는 만화책은 히스토리에, 3월의 라이온, 크게 휘두르며, 칼바니아 이야기 정도다. E북으로 모으는 건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 우주형제, 헌터x헌터다. 생각해 보니 다 일본 작가의 작품이고, 오래 연재한 작품뿐이다. 연재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새로 나오면 무조건 구매하는 작가도 있다. Go 히로미 Go와 어떻게 좀 안될까요를 쓴 아소우 미코토는 족족 구매한다.

이렇게 온통 일본 만화책이 내 만화책장을 가득 채웠는데, 국내 작가의 책이 계속 쌓이고 있는 책장 하나가 있다. 바로 권교정 작가, 일명 교님의 서가로 오래된 책은 물론 만화책이든 아니든 ‘권교정’ 작이라면 다 모으고 있다. 교님은 내가 처음 만화를 보던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고, 만화책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뒤늦게 예전 책들을 구매했는데 오래된 책은 구매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었다. 그래서 초기작 헬무트는 당연히 없지만, 그래도 스탬플러로 찍어놓은 <교의 리얼토크> 단행본을 중고로 구해 기뻤던 기억이 있다. 리얼토크는 정식 연재만화라 보기 어렵고, 후기만화를 모은 것이다. 후기 만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책으로 낸 것! 암투병 이후에는 리얼토크만 만화책으로 내는 데, 나올 때마다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책 자체가 그리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고, 꾸준히 팔리는 책이 아니면 금방 품절이 된다. 만화책은 책에 비해 그 주기가 훨씬 짧아서 때를 놓치면 구매하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새 책이 나오면 지체하지 않고 구매하는 편이다. 교님은 리얼토크를 낼 때마다 거의 굿즈를 만드는 편인데, 실용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1권은 그립톡과 작은 파우치인데, 파우치는 사이즈가 매우 적절해 2020년부터 지금까지 매우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3권의 마우스패드도 패드 없이 쓰던 책상에 올려놓았다. 이번에 나와 번개같이 구입한 4권의 멀티 클리너도 곧 쓰임새를 잘 찾을 것이다.

사실 지금 새롭게 교님을 영업하기는 참 어렵긴 하다. 리얼토크가 고양이, 개, 새, 원예 등의 돌봄을 다루고 있고, 읽는 내 입장에서야 작가님의 일상이 매우 재미있지만 처음 만난 독자가 낯선 작가의 암투병 이야기를 즐겁게 보긴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대표작이라 말할 수 있는 책이 죄다 연재중단이어서 권하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이 콘텐츠 중독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지금까지도 애정하는 작가이기에 말을 조금 더 붙여 설명해 보려고 한다.

교님은 수학선생님을 하다 만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나는 처음에 동화를 재해석한 단편으로 만화잡지에서 처음 알게 되었지만, 그전에 이미 <헬무트> 등의 단행본을 냈었다고 한다. <어색해도 괜찮아>나 <정말로 진짜> 같은 학원물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연재를 따라가며 본 것은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였는데, 한국 순정만화 잡지의 한계로 연재처를 한 번 옮기기도 했다. 그런 어려움으로 <마담베리의 살롱>이나 <매지션>과 같은 책은 이후 자비 출판으로 나왔다. 완결된 작품 없이 계속 새로운 이야기가 1-2권씩 나오다 꽤 오래 코믹뱅이라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연재가 된 게 <청년 데트의 모험>이다. 세계관 덕후인 교님이 만들어낸 판타지 세계관으로 데트의 프롤로그인 <페라모어 이야기>는 교님을 영업할 때 늘 권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교님은 많은 부분이 좋지만, 홈페이지를 운영한다는 것도 호감포인트였다. 한창 활발할 때는 텍스트 게임도 운영하고, 팬아트 작품도 공유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교님이 암투병 중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3기였기 때문에 수술을 받는다 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교님은 그 상황에서 완결되지 않은 작품들이 많아 걱정이 많았나 보다. 만약 교님이 앞으로 연재를 할 수 없게 된다면 글로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은지, 누군가가 그 스토리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을지 투표를 받았었다. 기억엔 다른 누군가의 그림으로 만나보고 싶지 않다는 투표 결과가 나왔다. 그때 교님이 와우를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 플렉스를 해서 용이 되었기는 기억이 난다. 찾아보니 그게 2011년의 일이다. 교님은 암의 재발, 전이, 새로운 암.. 의 소식들을 전하기는 했으나 지금까지 작은 생명들을 돌보며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팬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리얼토크를 책으로 내주는 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한 것이다.

자, 그럼 내가 왜 교님을 좋아하는가. 그것은 오래도록 내게 당연한 일이어서 오래도록 설명하기 어려워했지만, 어느 날 교님의 책장에서 오랜만에 단편을 읽고 내가 왜 교님을 좋아하는지를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정리해 둔 글이 있어서 조금 옮겨본다.



단편의 제목은 <염소 치는 사람들>로 배경은 <청년 데트의 모험>의 세계관을 빌렸다. 대마법사 투게는 어느 날 갑자기 마법의 힘을 잃어버린다. 삶의 의지를 잃은 그를 염소를 키우는 청년 얀달이 보살핀다. 마법을 잃은 투게는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씩 하나씩 배우지만 평생 마법만 하던 사람이 농사일을 금방 배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 그를 얀달이 타박하자 투게는 자리를 뜬다. 미안해진 얀달은 투게에게 가서 사과를 하려고 하는데 투게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때문에 화난 것이 아니었다. 마법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마법에 모든 것을 걸었던 자신이 뿌듯하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발상의 전환, 긍정적 마인드, 생각지 못했던 포인트, 가슴을 쿵 때리는 어떤 것들.. 그런 것이 내가 교님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분명 교님의 이야기는 극적인 사건이 아닌데도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 이상하게도 그건 몇 번이고 계속 읽어도 느껴진다. 그래서 만화든 소설이든 상관없이 모두 좋다.

염소 치는 사람들 스토리 (1) https://goo.gl/vBxEpv
염소 치는 사람들 스토리 (2) https://goo.gl/YcQEDl



왜 후기도 아닌, 후기만화로 계속해서 책이 나오는지에 대해 궁금했던 누군가가 있다면 도움이 되길 바라며… 교님의 다음 리얼토크도 어서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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