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기

2/2 졸음은 내 친구

나비사슴 2024. 2. 3. 08:36

나와 웬만큼 친한 사람들은 한 번씩 듣게 되는 에피소드가 있다. 수능 때 졸았던 에피소드.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능뿐 아니라, 고3때 대부분의 모의고사에서 졸았다. 국어, 수학을 풀고 밥을 먹고 난 다음, 사회과학탐구 시간이었다. 몇 분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연필을 쥔 채로 졸다가 갑자기 깼다. 졸때 미열이 났던 것 같아 병원에도 가보았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모의고사라 긴장감이 떨어져서 그런 걸까 싶었는데(그럴리가) 수능때도 졸아버린 거다.

사실 중학교 때부터 수업 시간에 졸긴 했다. 그때 생각하기로는 수업이 너무 재미없는 게 조는 이유였다. 좋아하지 않던 수학 시간에 졸았으니까. 그런데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대학때도, 대학원 때도 졸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학 때는 좋아하는 선생님 수업을 들으며 긴장하기 위해 일부러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꾸벅꾸벅 졸았다. 대학원 때는 졸다가 고개가 뒤로 꺾였는데 교수님과 눈이 마주친 적도 있다. 억울한 건 정말 재미있고 좋아하는 수업을 들을 때도 그랬다는 거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걱정했던 게 바로 졸음 운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졸았던 적이 한두번 있는데 너무 소름이 끼쳤다. 그 이후에는 운전하기 전날 숙면한다. 피곤한 활동을 하고 돌아올 때는 미리 카페에서 한숨 자고 출발한다. 그래도 안될 때는 중간에 휴게소에서 잔다. 10분 정도만 자도 졸음이 방지된다. 이탈리아에서 운전했을 때도 놀이기구를 너무 많이 타서 피곤한 나머지 휴게소에서 30분 넘게 잠을 잤다. 덕분에 렌트 반납 시간이 늦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랜 시간 졸음과 함께 해오면서 유추해보건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1) 충분한 수면 시간을 충족하지 못해서 2)능동적으로 몸을 움직이거나 뇌를 자극하지 않아 지루하다 느낄 때.

첫 번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한 소리다. 그런데 내게는 지키기 꽤 어려운 조건이다. 나는 저녁형 인간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요새 출근 시간과 아침에 스픽을 하느라 6시에 일어나곤 한다. 피곤하면 11시에 바로 잠들지만, 대체로 내가 잠드는 시간은 12시 전후다. 6시간 정도 자는 건데, 내가 충분하다고 느끼는 수면 시간은 7-8시간인 것 같다. 그래서 손목닥터의 실천 목표에 11시 이전에 잠들기를 넣어놨다. 잘 지켜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지.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보다 더 빡세다. 대체로 재미있는 활동을 하려고 하지만, 그게 늘 내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내게 덜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은 회사에서 철학책을 읽으려 마음먹었다. 야간 근무를 하는 사람을 대체해 근무를 했는데, 거의 전화가 오는 일이 없어 자리만 지키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난번에도 들고 왔다가 왕창 졸았던 경험이 있다. 이번엔 몸을 움직이며 읽어보기로 했다. 8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들고 사무실을 빙글빙글 돌며 책을 읽었다. 역시나 졸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들고 걷는 것도 쉽지 않아 잠시 앉아 읽었는데 언제나처럼 졸았다. 정말 내 몸은 솔직해서 탈이다.

 

낮잠을 자는 것이 공식화되어 있는 나라도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졸음을 떨치지 못할 거라면 그 나라에서 사는 게 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 발더스게이트 없는 주말  (0) 2024.02.05
2/3 정리하며 이해하기  (0) 2024.02.04
2/1 오늘은 힘듦  (0) 2024.02.02
1/31 밥상 차리다보면 잘 하게 되겠지  (0) 2024.02.01
1/30 꿈꾸는 사람  (0) 2024.01.31
최근에 올라온 글
글 보관함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