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어릴 땐 비가 오는 게 싫었다. 괜스레 기운도 다운되고, 비에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는 것도 싫고, 비가 신발을 침투해 양말까지 축축해지면 이보다 더 최악은 없다고 생각했다. 복구할 수 없는 옛 일기에는 비 오는 날엔 우울한 기분을 있는 대로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비를 맞으며 운동을 시작하면서는 조금 달라졌다. 여름의 비는 그 자체로도 기온을 낮춰주는 데다, 몸으로 직접 맞으면 더위를 식힐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축축함은 좋아하지 않아, 비 오는 날엔 맨발에 슬리퍼나 샌들을 더 선호한다. 옷도 비를 맞아도 잘 말라서 잘 달라붙지 않을 옷을 선택한다. 덕분에 비 맞는 것이 전에 비해 최악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처음 8월에 부산으로 여행 가는 스케줄이 잡혔을 땐, 더위로만 기억될까 왠지 두려웠다. 게다가 비 예보를 본 이후에는 불편함이 예견되어 있어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비가 오면 덜 덥겠거니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여행을 마무리할 즈음엔 다행히 비가 와서 딱 좋았던 여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부산은 한국 제2의 도시로, 대중교통이 꽤 잘 되어있는 도시다. 그런 이유로 단 한 번도 부산에선 렌트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가 왔기 때문에 차로 돌아다니는 여행이 제격이었다. 5명의 인원이 각자 우산을 쓰고 짐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게다가 각자가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달라서 서에서 동으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모두를 싣고 달리는 차가 있는 것이 매우 편했다.
각자 가고 싶은 곳을 이야기하고, 유일한 J성향의 친구가 완벽한 여행 계획을 짰다. 내가 가자고 주장한 곳은 부산현대미술관이었다. 2019년 아트부산으로 알게 되어, 그 뒤로 기회가 되면 늘 가보려고 하는 곳이다. 올해 초에도 가려다가 컨디션 문제로 못 갔었는데, 이 기회에 갈 수 있어 좋았다. 이번에 처음 같이 여행하게 된 친구가 있어 조금 걱정했지만 모두들 너무 만족스럽게 감상을 해서 기뻤다. 더구나 비가 오는 날이어서 미술관이 딱이었다. 을숙도를 돌아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그건 다음 여행의 숙제로 남기게 되었다.
산과 바다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도 산을 고르겠지만, 바다도 좋아하는 편이다. 물속 깊이 몸을 담그고 노는 것보단, 맨발로 파도를 느끼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엔 비가 오기도 하고, 물놀이를 즐기지 않는 멤버도 있고 해서 바닷물에 발을 담그지는 못했다. 하지만 바다가 보이는 뷰에서 맛있는 회와 매운탕을 먹기도 하고, 비가 그친 둘째 날에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도 했다.
같은 지역에 가더라도, 같이 가는 사람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여행의 묘미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여행은 쏟아지는 빗속을 드라이브하는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게 될 것 같다.
'2025년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긴 통화를 하고 싶어지는 친구 (0) | 2025.08.26 |
|---|---|
| 서울살이 지도 (0) | 2025.08.22 |
| 유튜브 알고리즘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0) | 2025.08.18 |
| 역대급 부지런한 하루 (0) | 2025.08.10 |
| 슬립 노 모어 서울 프리뷰 (8/2) (0) | 2025.08.08 |
| 취향의 교환 (0) | 2025.08.02 |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