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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일기

11/12 유예된 삶

나비사슴 2024. 11. 12. 21:42

대회에 참가하기 전 상담에서, 나는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화두를 꺼냈다. 그리고 오늘 상담소에 도착하자마자,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신나서 전했다. 상담 선생님은 어째서 이런 간극이 생기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는데, 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실 짱구와 함께 살 때는, 그래도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조건부였으니, 아마 그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굳이 생명 연장을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고, 나에게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한다면 피하지 않고 싶은 마음. 가끔은 이런 마음이 실제로 닥치지 않았으니 가지는 그런, 가진 자의 여유를 부리는 걸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나는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나도 미련이 없다.

왜 그런지를 모른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상담을 하다 보니, 조금 그 이유를 더듬더듬 알 수 있었다. 일단 나는 의미 없이, 재미없이 사는 것을 몹시도 싫어한다. 지금의 삶을 온갖 재미로 채우는 행위도 그게 싫어서 인 것 같다. 나에겐 밖에서 누구를 만나는 것도, 집 안에서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내 삶을 재미로 채우기 위한 방법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 그런 재미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체력도 없고, 점점 줄어갈 테니 그런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게 첫 번째 이유인 것 같다. 물론 성격상, 어떤 상황에서도 재미를 찾으려 노력하고 그건 꽤 성공적일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런 무료하고 의미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삶은 살고 싶지가 않다.

두 번째로, 나는 사람들에게 깊게 정을 주지 않는다. 보통 피로 엮여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가족에게도 그렇고, 내 속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친구들에게도 그렇다. 나는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도 않고, 내 삶의 중요한 선택에 대해 조언을 구하지도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걸 한다.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없진 않지만, 저마다 나보다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지 않으려 적당한 거리를 둔다. 나에겐 동반자가 될 사람의 의미가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기준이 매우 높고, 완벽하게 맞지 않으면 없으니만 못하다는 생각에 그 자리를 비워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담을 하며 나에게 큰 화두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짱구처럼, 누군가를 돌보게 되면 세상을 떠날 시간이 유예될 것 같다. 가장 강력한 후보는 세상에 태어날지 아닐지 모를 내 아이다. 세상에 미련을 갖고 살아가는 삶이 오길 바라는지, 아닌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완벽했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으니, 당분간은 하루살이의 마음으로 어느 누구보다도 신나고 즐겁게 세상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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