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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일기

10/16~10/22 건강의 한 주

나비사슴 2024. 10. 23. 17:55

월화 내내 달리기를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피곤했다. 수요 달리기를 포기하고 전부터 고민하던 파타고니아 바람막이를 한번 입어보러 신촌 현대백화점에 갔다. 이번 11월에 갈 OMM에서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2017년에 사두었던 옷들이 그래도 멀쩡해서 새로운 옷을 사기보다는 있는 옷들을 잘 껴입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고, 상태가 엉망이 된 바람막이만 새로 사기로 한 것이다. 원래 사려던 제품은 없었지만, 직접 입어보니 사이즈를 대략 감잡을 수 있었다. 옷을 입어보면서 2배 이상 비싼 옷을 입어보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핏감이 괜찮아서 혹했으나, 내가 바람막이를 입는 빈도를 고려해 보았을 때 10년 넘게 입어도 뽕을 뽑지 못할 것 같아 아쉽지만 다른 옷으로 구매하기로 했다. 이 정도 자제력이면 뭐를 해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조금 상승했다.
 
목요일엔 다음주 일요일에 있을 대회에 처음 참석하는 분을 위한 짧은 교육을 진행했다. 초보 코스로 신청하시라고 했는데, 도전정신이 강하신 분이라 어느 정도 알려드리고 부딪쳐보시도록 하는 방법을 택했다. 다시금 교육 자료가 필요하다고 느껴지긴 했는데, 그래도 내가 아는 한,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을 알려드렸다. 모임에서 처음 봤을 때는, 겉으로 보였던 모습보다 훨씬 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생각은 했었는데, 거의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보통이 아닌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테니스를 꽤 오래 치고 있었고, 예전에는 MTB를 즐겼다고 한다. 또 시베리아 대륙을 차로 이동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신 분이었다. 세상엔 참 다양한 취미가 있고, 생각지 못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에 검색을 해보았는데, 대륙 횡단은 기차만 꿈꾸기로 했다.
 
금요일 새벽에 가민 코치의 안내대로 800m를 4:30~50 대로 뛰는 인터벌을 하기로 했다. 저녁엔 주말의 백패킹 행사를 위해 짐을 싸야 해서 시간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새벽 5시 즈음 나와 살살 뛰면서 드릴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인터벌을 시작하는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8번의 인터벌을 해야 하는데, 두 번쯤 했을 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집 근처에 있는 공중화장실 위치는 알았지만, 홍제천과 불광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화장실이 어디 있을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들고 오지 않아 순전히 감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불안했다. 일단 옆에 있는 계단을 올라 평화의 공원에 가보기로 했다. 공원에 화장실이 있었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는데, 올라가자마자 낯선 풍경이라 당황했다. 여차저차 헤매다 기억 속의 편의점 옆 화장실을 찾았는데, 리모델링 중이었다. 다행히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된 다른 건물의 화장실을 겨우 찾아 큰 사고를 면했다. 그 후에도 컨디션은 계속 좋지 않아 인터벌을 관두고 천천히 뛰어 집으로 돌아왔다. 속이 좋지 않은 게 캠핑 갔을 때와 다음 주에 있을 건강검진에 영향을 미칠까 봐 조금 걱정이 됐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OMM 때 장비도 확인하며 짐을 싸다보니 거의 새벽 2시가 다 되어 잠에 들었다. 6시 즈음 차를 픽업하기로 해서 수면부족으로 졸음운전을 할까 봐 좀 걱정했다. 다행히 크게 졸리지 않아 무사히 진안까지 갔다. 중간에 한번 마트에 들러 고기와 같이 구워 먹을 가지와 버섯을 샀다. 할인하는 피망 4개도 같이 구매했는데 나중에 먹다 보니 뜻밖의 킥이 되어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원래는 12시 좀 넘어 출발하는 하이킹 프로그램에 참가하려 했는데, 차가 좀 밀려서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없었다. 하이킹은 포기하고 열심히 타프를 친 후 의자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다 부스에 구경을 갔다. 다양한 브랜드가 나와 있었지만 백패킹 용품 관련 부스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구멍 난 에어 매트가 있는데 이걸 수리해 준다는 소식을 미리 전해 들었다. 이 매트는 오래전 이 행사에 부스로 나온 니모 브랜드에서 특가로 구매했었다. 니모에서는 다른 버전의 매트 제품을 팔고 있어 이제는 절판된 제품이다. 캠핑을 워낙 많이 하진 않아서 몇 번 사용도 못하고 구멍이 나서 속상해하던 터였다. 발포매트를 구매해서 쓰고는 있지만, 백패킹에서 쓸 수는 없어 만약 이 매트를 고치지 못하면 새로 사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성스럽게 수리를 해주셨고 매트에 구멍 4군데를 막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인연이 되었으니 이 매트와 더 오래 함께 할 것이다.
 
1박 2일의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보은에 들렀다. C언니의 운전연수겸, 죽 수준의 대추차도 맛볼 겸 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일요일이 대추행사의 마지막날이라 차가 좀 많았다. 그래서 좀 겁을 먹었지만 다행히 마지막날이다 보니 차들이 슬슬 빠져나갔고, 아주 맛있는 산채 반찬과 함께 버섯전골을 먹고 나서는 생각보다 여유롭게 운전해 갈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계속 많아 느리게 갈 수밖에 없었지만, 차의 자율주행 기능을 이용해 생각보다 수월하게 운전해서 올라왔다. 이제 웬만한 장거리 운전은 부담 없이 할 수 있는데, 가장 큰 걱정은 요즘 적절한 수면 시간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출발하기 전에 15분 정도는 카페에서 자고 왔는데도, 몇 번의 졸음의 위기가 있었다. C언니를 열심히 운전연수 시키고 있으니 조만간 운전자를 교체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연대기 마지막 모임을 드디어 끝냈다. 할인하기에 생각없이 구매했던 어슐러 르 귄 시리즈가 이렇게 긴 모임으로 이어질지 몰랐다. 이름 밖에 모르던 작가의 책을 이렇게 대부분 읽게 되니 너무 친밀해진 것 같고, 사실 살아계실 때 책을 읽지 못했던 게 아쉽기도 했다. 어스시 연대기를 내가 청소년 즈음이나 이십 대 초반에 읽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매우 궁금해지기도 했다. 선과 악으로 선명하게 나뉘지 않는 세계, 어떤 사람에게나 어둠이 있을 수 있다는 부분이 설득이 되었다면 조금 안정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싶다. 모든 사람에게 애정이 넘치는 글을 쓴 어슐러 르 귄의 작품을 대다수 훑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이제 좀 질려서(?) 남은 책들은 이 모임에서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읽어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이제 이 모임에서 어슐러 르 귄은 다음에 욕하면서 보는 '게드전기'로 마무리하고, 우리의 노벨수상자 한강의 책 읽기로 넘어가기로 했다.
 
화요일엔 건강검진을 했다. 전날 저녁부터 먹지 않고, 화장실도 참았다. 아침 8시에 예약을 해서 부랴부랴 나갔는데, 버스를 잘못타서 좀 늦었다. 하지만 건강검진센터는 대략적인 시간만 정해둔 것인지 특별히 시간에 구애받지는 않아 보였다. 8층에서 접수를 하며 여러 추가 진단의 유혹을 넘고, 9층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건강검진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을 시작하며 인상적인 부분은 각 층마다 도우미들이 많았던 것이다. 차트를 들고 해당 층에 도착하면 두리번거릴 새도 없이 도우미가 나타나 차트를 받아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었다. 바닥에는 어떤 부서로 가야 하는지 색깔로 표시되어 있었고, 나는 안내받은 대로 색깔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해당 부서에서 접수 후 앉으라고 하는 색깔의 의자에 앉아있으면 이름이 불렸다. 동명이인을 막기 위함인지, 늘 이름과 생년월일을 요청받았다. 또 내가 처음 옷을 갈아입으며 받았던 열쇠 키의 번호, 8번도 나를 정의하는 중요한 정보여서 반복해서 말했다. 대부분 그렇게 도우미들이 많았지만 여성검진센터는 접수하는 인원이 부족한지 차트를 직접 차례대로 놓아야 했다. 뭔가 건강검진센터만의 규칙이 명확하게 있고, 그 흐름에 따라 헤엄치는 물고기가 된 기분으로 건물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고, 마지막 수면 내시경 검사를 끝으로 건강검진이 종료되었다. 처음 하는 수면내시경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나는 잘 잠들었고 잘 깨서 집에 잘 돌아왔다.
 
건강검진이 끝나고 나서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조금 피곤한듯해 취소했고 원래 계획되어 있던 가민 코치 운동도 하지 않았다. 대신 죽을 점심으로 먹으며 그동안 뒤로 미뤄두었던 영상물을 감상했다. 처음엔 대본 리딩 클럽의 참여를 위해 봄날은 간다를 봤다. 전에 접속을 볼 때는 대본이 없어 그냥 영화만 감상했었는데, 이번엔 먼저 대본을 받아서 비교하며 봤다. 꽤 다른 점이 많았다. 대본에서 구구절절하게 설명했던 걸, 실제 영화에서는 대사를 좀 은유적이고 간결하게 표현했다. 이 영화의 명대사 중 하나인 '라면'도 그렇고, 결혼을 의미하는 '김치'도 그랬다. 헤어지는 장면도 대본에서는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영화는 몇 개의 대사로만 처리했다. 다만 영화는 상우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은수는 불친절하게 느껴졌다. 은수가 느끼는 불안, 관계에서의 두려움 이런 것들이 영화에는 느껴지지 않고 그냥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어떤 나쁜 여자를 그리는 것 같았다. 그런 아쉬움은 있었지만 영화의 영상미는 훌륭했다. 또 접속처럼 이 영화도 메인 테마곡을 엔딩에 틀어줘서 그 당시의 유행인가 싶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정숙한 세일즈' 2편과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3편 보았다. 정숙한 세일즈는 주연 4명이 흥미로워 보았는데 3화부터 답답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보았다. 1편은 전에 졸면서 봤었고, 나쁘지 않았던 기억으로 2편부터 보았다. 이 드라마의 좋은 점들은 아주 많다. 먼저, 극본 공모에서 우수상을 받은 원작 없는 오리지널 작품이다. 그래서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드라마를 즐길 수 있는 게 좋았다. 각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는데, 극본 자체가 거짓과 진실의 경계를 왔다갔다하며 보여주고 있는데 그게 고구마가 아니게 느껴지게 하는데 그 연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메이킹을 보니 배우들이 목소리의 톤뿐 아니라 작은 근육의 움직임까지도 신경 쓰고 있어서 그게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림자를 활용하거나 일반적으로 드라마에서 쓰지 않는 뷰로 화면을 보여줘 연출이 훌륭하다고는 생각했는데, 메이킹에서 감독의 상세한 디렉팅이 좀 감동스럽게 다가왔다. 젊은 여자 감독이었는데 이전 연출작 중에는 '옷소매 붉은 끝동'을 봤었다. 이 드라마 전에 멧돼지 사냥이라는 극본 공모로 당선된 4부작 드라마를 연출한 적이 있었는데,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처럼 약간의 스릴러인듯해, 감독이 이런 쪽의 연출에 자신이 있나 싶었다. 배우들도 감독의 연출에 신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앞으로 이 드라마를 열심히 챙겨보고, 감독의 전작이나 이후의 작품들도 챙겨볼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저녁엔 세 번째 상담을 받았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면서 갔는데,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천착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가 흘러갔다. 이 이야기는 3회 차 상담에서는 마무리 짓지 못해서 다음에도 이어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처음엔 단순히 직업에 대한 고민으로 상담을 신청했었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나 스스로 풀어가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많았구나 하고 느꼈다. 10번의 상담을 끝까지 성실하게 진행하게 된다면, 서울시에서 지원받는 이 상담을 신청한 것을 올해 잘 한 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외면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충분히 잘해나갈 수 있기를, 후회가 남는 시간으로 기억하지 않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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