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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세상을 무엇으로부터 배웠느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 중에 고민을 많이 하긴 하겠지만 ‘만화’라고 답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운 시기에 마이페이스형인 캐릭터(천연소재로 가자)를 보며 내 정체성을 찾았다. 전혀 관심 없던 스포츠인 야구(H2), 농구(슬램덩크) 그리고 밴드음악(나나)도 만화로 배웠다. 아동학대의 무서움(몬스터, 바나나피쉬)이나 종교의 힘(용오)과 같은 세상의 어두움도 만화로 접했다.
작년에 클래식 수업 시리즈를 모두 읽었는데, 클래식에 대한 호감도 바로 만화로 얻었다. 처음엔 노다메 칸타빌레였지만, 피아노의 숲으로 쇼팽 콩쿠르에 대해 알게 되며 더 큰 관심으로 이어졌다. 물론 여전히 다른 좋아하는 것들에 비해 아직 클래식 음악은 내게 비중이 매우 낮다. 음악 자체로 감상하기보단 배경음악, 혹은 자장가 음악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긴 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아름다움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나는 핸드폰에서 리디북스 앱으로 전자책 읽기를 즐긴다. 전자책을 리더기가 아닌 핸드폰으로 보면 눈이 아프다는 사람도 있다. 내 눈이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무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나는 이렇게 보는 것이 가장 편하다. 예전엔 만화책을 모두 실물 책으로 샀지만, 이젠 전자책으로 모은다. 안좋은 점은 내가 좋아하는 책을 다른 이들에게 빌려주지 못하는 것이고, 좋은 점은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동하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좋은 점을 살려, 오늘은 하루종일 피아노의 숲만 봤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술술 넘어갔다. 원래는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보려고 했으나, 그건 잘 되지 않았다. 마지막 결선 무대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만 조금 들었다. 머리 속에 그 음악들이 재생되는 것도 아니고, 음악을 들을 생각도 없는데 왜 재미있게 느껴질까? 실제로 먹진 않지만 눈으로 먹는 것을 보고, 리액션을 보며 만족해하는 먹방을 보는 느낌일까?
그것도 맞지만 이번에 읽으며 나는 이 작품이 성실함에 대해 가지는 태도가 너무 좋았고,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처음에 이 작품은 천재(카이)와 범인(슈헤이)이라는 일반적인 대결 구도를 가진다. 카이에 대한 열등감을 가진 슈헤이는 남들보다 열심히하는 것 외에는 자신이 가진 장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 콩쿨 참가자 중 한 명이었던 아담스키가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냐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성실함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알고보니 카이는 누구보다도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카이는 창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낙인과 범죄자들이 사는 동네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정규 교육과정까지도 받지 못할 뻔했다. 그럼에도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또 그의 재능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쇼팽 콩쿠르에 도전한다. 슈헤이는 단순히 카이를 이기려는 마음만 있었지만, 카이는 세상에 자신의 음악을 보여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
물론 자라난 환경이 다르고, 각자가 가진 고난이 다르다. 슈헤이도 유명인의 2세로 자라며 짊어진 많은 사람의 기대감이 너무나 무거웠을 것이고, 아버지의 대리로 라이벌 의식에 갖혀 괴로웠던 시간이 많았던 것으로 표현된다. 슈헤이는 어릴 때부터 카이를 통해 갖게 된 열등감으로, 아직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쇼팽 콩쿠르에 출전하게 된다. 콩쿠르 중간에 자신만의 피아노를 찾게 되지만, 준비되지 않은 변화는 실패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 좌절감으로 카이에게 그동안에 갖고 있던 열등감을 표출하지만, 결국 슈헤이가 음악을 버리고 싶었던 순간 음악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해준 것은 카이 덕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라이벌이 아닌 그와 평생을 함께 음악을 할 친구로 받아들여, 카이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 어릴 때 봤을 때도 너무 흥미로웠는데, 지금 봐도 놀라웠다. 이토록 선한 사람들의 힘을 보여주며 감동을 주는 작품은 정말 많지 않다. 이렇게 또 만화로 세상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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