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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1/28 세계관 장인

나비사슴 2024. 1. 28. 19:53

어느 덧 어슐러 르 귄 세 번째 모임. 이번엔 주말에 모였다. 규칙이 딱히 없는 자유로운 모임이라 다들 천천히 도착했다. 책도 다 못읽고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도착해서 마지막 멤버가 오기 전까지 읽었다. 발제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각자 읽고 생각한 것들을 나누었다. 책을 워낙 많이 읽는 친구들이고,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달라서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었다.

이번에 읽은 세상의 생일은 이제까지 읽은 책 중에 가장 페이지 수가 많았다. 단편이 아닌 중편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 두 편이나 됐다. 게다가 앞의 6개 작품은 헤인 연대기라고 부를 정도로 비슷한 세계관의 이야기를 했는데, 뒤의 두 편은 다른 세계관의 이야기인 듯해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전까지 책들은 그래도 같은 세계관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면, 이번 단편집의 공통점은 다큐멘터리 톤? 서사보다는 세계관을 설명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했다.

세그리의 사정 같은 경우엔, 이갈리아의 딸들을 뺨치는 미러링한 세계를 그렸다. 선택하지 않은 사랑과 산의 방식은 세도레투라는 4인 남녀의 결혼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예외인 사례도 보여줬다. 고독은 읽을 때는 몰랐지만, 다 읽고 오늘 이야기하며 서문을 읽어보니 내향인이 주가 되는 세계의 이야기였다. 잃어버린 천국은 미지의 세계로 항해하는 우주선의 이야기였는데, 비슷한 스토리들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언어적인 문제와 종교에 대한 사회적인 실험을 보는 듯했다. 어슐러 르 귄이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세계관 장인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작품집이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고, 뒷풀이로 맥주를 마시러 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종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기독교가 베이스인 한 사람과, 였던 두 사람, 그리고 그 어느 것도 아닌 한 사람이었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책들을 읽는 사람이어서 그랬을까? 일반적으론 친한 사이에 종교 이야기는 금지라지만, 우리는 왜 한국에서 이토록 종교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은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임을 한다는 것은 복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제 어슐러 르 귄 시리즈는 서부해안연대기만 남았다. 이제까지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었던 어슐러 르 귄이기에 마지막 시리즈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책을 읽는 즐거움을 계속 이어갈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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