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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일요일 스케줄은 일출보기였다. 섭지코지에서 성산일출봉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전날 또 3시까지 이야기를 하다 시간을 보내 일찍 일어나는 데 실패했다. 우리는 오늘은 그냥 카페 가서 브런치를 먹고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W님이 근처에 카페를 하나 찾아서 별 이견 없이 그 카페로 갔다. 나는 야채, 소세지, 베이컨, 계란, 감자튀김이 나오는 브랙퍼스트 세트를 먹기로 했다. 천혜향 블랜디드 티도 같이 시켰더니 가격이 2만원이 넘었다.
감기 때문인지, 아니면 음식 자체가 너무 달아서인지, 입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끼적끼적 먹고 있는데, W님이 야채만 빠르게 먹고서는 더 먹지 않는 것이었다. 다 먹었냐고 물어보니, 먹으면서 먹는 것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물론 내가 맛있게 먹고 있는데 맛없다 평가하면 기분 좋을리는 없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여기는 최악이라고 하며, 독설쇼가 시작했다.
1. 음식을 시키고 나서 가지러 가야 한다. 물론, 요새 그런 셀프 픽업하는 곳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가격대로 보아도 싼 곳은 아닌데 1층에서 2층까지 무거운 그릇들을 들고 올라올 이유가 없다.
2. 재료를 너무 싼 것만 쓴다. 야채도 마트에서 파는 싸구려이고, 소세지도 분홍 소세지 맛이 날 정도로 질이 좋지 않다. 빵도 햄버거에 쓰는 빵을 그대로 썼는데 너무 성의가 없다. 감자튀김도 냉동을 해동한 것 같다. 에스프레소도 너무 맛이 없다.
3. 이런 맛 없는 곳을 자신이 골랐다니 너무 미안하고 속상하다. 왜 사람들은 맛없는 장소를 평가하는 데 인색한지 모르겠다.
물론 바다 뷰에, 아이들이 같이 와서 있기 좋은 넓은 장소라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장소이긴 했다. 음식이 대체로 달아 사람들이 좋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W님이 음식의 신선도와 성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보니 단점이 크게 부각된 듯하다. 그렇게 괴로워하던 W님은 빨리 다른 장소로 가고 싶어했고, 우리는 전에 당근 뽑기 체험을 하려고 생각했던 당근과 깻잎이라는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당근과 깻잎은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백구가 반겨주었다. 우리는 당근주스, 감귤주스, 아로니아주스, 깻잎케이크와 당근케이크를 시켰다. 여기는 아까의 미안한 마음을 담아 W님이 쏘기로 했다. 사장님은 음료를 준비하는 시간동안 뒤에 당근밭에 가서 당근을 뽑아보라고 권유해주셨다. 사람들이 오며가며 당근을 뽑아서 이게 당근인가 잡초인가 싶은 느낌의 당근 밭이었지만, 뽑고 보니 제법 큰 당근도 있어서 신기했다.
햇살이 매우 따뜻해 밖에서 마시기로 했는데, 1월에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게 매우 놀라웠다. 아까 카페와 달리 이곳의 음식들은 성의가 가득했다. 햇빛을 받고 고양이와 노닥거리며 성의없는 음식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했다. 별 대화도 없이 따뜻한 곳에서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보낸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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