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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주 여행은 동쪽에 숙소를 잡았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해녀의 부엌을 가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해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공연을 보고 해녀분들이 잡은 재료로 만든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라 들었다. 그렇게 동쪽으로 숙소를 고정하고 보니, 가고 싶은 다른 곳들을 정하거나 뒤늦게 도착하는 멤버 픽업 등 불편한 점이 꽤 있었다. 그래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 보기 힘들 것 같아 그대로 가기로 했다.
오전에 동쪽 숙소에서 제주 공항으로 아침에 도착하능 멤버 픽업을 하고, 비자림에 들렀다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제주에 왔으니 바다를 보자며 월정리에 갔고 카페에 들어가 몇몇은 잠을 자고 몇몇은 깨어서 바다 풍경과 카페를 즐겼다. 5시가 공연 시작이어서 그 전에 저녁에 먹을 와인과 술을 근처 바틀샵에 들러 구매하고,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춰 해녀의 부엌에 도착했다.
해녀의 부엌은 80세가 훌쩍 넘은 상군 해녀이신 김춘옥 할머니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시작했다. 제주도 4.3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너무 많이 죽어서 그게 무섭다기보다는 놀이처럼 느껴졌던 아이. 오빠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붙잡혀가자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공부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물질을 못하는 어머니 대신 집안의 경제를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고, 김춘옥 할머니는 꿈보다는 현실을 선택했다.
할머니는 해녀로 살며 아이도 아들 하나에 딸 셋을 낳았다. 남편도 세상을 떠나 어려운 사정이지만, 할머니는 딸들을 모두 공부를 시키고자 했다. 주변에선 제주에 태어나 해녀의 딸이라면 당연히 해녀가 되어야 한다며, 딸들을 교육시키는 할머니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큰 꿈을 꾸었던 할머니는 목숨을 넘나들며 물질을 하면서도 딸들의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다.
공연은 제주 해녀에 대해 알리고자 하는 뜻이 있는 청년들이 주로 연기를 하고, 마지막 순간에 할머니가 등장해 과거의 나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노래를 부르며 1부 공연이 끝났다. 처음부터 눈물을 흘리는 분이 있는 걸 봤고, 내 옆에 있는 동료도 훌쩍이는 걸 보았다. 꿋꿋하게 살아낸 할머니의 삶이 감동스러워 나도 마지막엔 눈물 몇 방울을 흘렸다. 근데 뒤쪽에 앉아있던 멤버 한 명은 거의 오열을 했다고 한다. 꿈을 포기하고 살아낸 그 삶이 너무 자신의 모습으로 보여 눈물이 났다고 했다.
음식을 먹기 전에 2부 해산물 이야기 시간이 있었다. 언제나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공연에서는 뿔소라와 군소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제주에서 주로 나는 뿔소라는 현무암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소라에 뿔이 생겼단다. 일반적인 소라와 다르게 손질을 위해서는 망치로 쳐야 해서, 재미나게 퍼포먼스를 해주셨다. 생산량의 80%가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어 의존도가 높아 고민이 많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셨다.
군소는 처음 들어보고 처음 먹어보는 해산물이었다. 자주 잡히는 해산물은 아니며, 해녀분들도 군소를 잡으면 집으로 가져와 가족끼리 먹는다고 했다. 잡을 때 크기는 크지만 창자와 보라색 먹물을 다 빼내고 나면 손가락 세개 정도의 크기로 줄어든다. 두 귀와 앞으로 나와있는 코가 검은 소를 닮았다 하여 군소라 불린다 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군소는 배지근한 맛이 난다고 하며 제주 사투리에 대해서도 소개해주고 알차게 해산물 이야기 순서가 끝이 났다.
해녀 분들이 직접 채취하고, 직접 만들어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마지막, 김춘옥 해녀님과의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이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극정성으로 키워낸 아들 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여전히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던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 공연이 얼마나 할머니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공연에 온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하시며 엇박이 계속 함정처럼 치고 들어오는 노래를 부르고 공연이 끝났다.
뒤늦게 공연장 곳곳에 써 있는 글씨와 리플렛을 보다가 왜 이 곳이 해녀의 부엌이라 불리는지 알았다. 해녀가 차리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바다가 바로 해녀들의 부엌이라고 했다. 우리는 숙소에 돌아와 왜 울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해녀의 부엌은 울음과 웃음과 감동과 맛있음이 있는 공연이었고, 아마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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