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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 사는 H가 한국에 왔다. 갑작스러운 약속이었지만, 다행히 시간이 맞아 놓치지 않고 만날 수 있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는지 찾아보니, 4년 전이었다. 그때 어디서 만났던 것인지 기억을 하지 못했는데, 식당을 고르다 보니 그때와 비슷한 메뉴가 있는 곳을 발견했고, 딤섬과 면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뚝섬 근처의 회사에 다니던 때라 그 근처에서 맛있다는 곳을 찾아갔었다.
H는 오랜만에 만났지만, 얼마 전에 이메일을 주고받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4년의 세월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기 때문인지,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 자연스럽고 편했다. 이야기 주제에 나이와 노화에 대한 걱정이 추가된 게 유일한 변화였을까. 우리는 같은 포인트에서 신나게 웃는 경우가 많았는데, 도서관에서 일할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핫플 성수에서 만났지만, 우리가 정한 장소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둘만 있었다. 시끄럽게 웃고 떠들며 가게 안을 우리만의 분위기로 가득 채우다, 서울숲 공원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공원까지 가는 길은 말은 카페거리지만, 실상은 팝업거리였다. 포켓몬, 칠성사이다 등등 곧 사라질 가게들이 많았다. 또, 소금빵이나 떡 같은 걸 파는 곳은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금요일 저녁이라 사람이 적은데도, 핫플의 면모는 엿볼 수 있었다.
밤이 되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서울숲엔 거의 국화나 다름없는 벚꽃이 많았다. H의 어머니가 알려주신 바에 의하면 수선화 같은 꽃도 많이 심겨 있다고 하는데, 발견하기는 했으나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웠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은 국화의 거리를 지나, 한적한 숲길로 걸었다. 카페를 갈까 하다가 공원으로 왔는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와있는 동안 머무르는 H의 부모님 댁이 멀어 너무 늦지 않게 가야 했기 때문에, 서울숲 전체를 다 돌지는 못했다. 오리엔티어의 본능을 발휘해 지하철 역까지 최단 거리로 안내했다.
짧은 시간 만났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꽉꽉 채워 한 느낌이었다. 아쉬울 법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다음에 만나게 될 때는 몇 년 뒤가 될 것 같았지만, 그게 너무 멀게 느껴지지 않았고,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없었다. 우리는 내일 또 만날 것처럼 밝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게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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