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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님 집에서 사육당한 날, K님이 피크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와 피크민을 시작한 시기도 비슷해서 레벨도 비슷했다. 피크민은 의외로 섬세하게 설계된 게임이어서, 알고 있으면 좋을 부분이 많은데 그런 부분을 K님도 알고 있어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보를 찾아봐 알게 된 것도 있지만, 그것 말고 경험으로 알게 된 것들을 K님이 이야기하니 너무 신이 났다. 그렇게 덕토크를 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J님이 피크민이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임이었냐며 놀라워했다.
J님은 1월 1일에 피크민을 가입시켰다. 예전에 선릉에서 회사를 다닐 때,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해서 같이 걸은적이 있다. 그땐, 내가 고관절이 좋지 않아 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걷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하며 2-3km를 걸었다. 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퇴근 후에, 선릉 안쪽을 걷기도 하고 바깥쪽을 걷기도 했다. 하지만 내 몸이 성치 않고, 시간 내기도 쉽지 않아 몇 번 하다 말았다. 지금도 J님에게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났을 때 피크민을 같이 하자 권했다. 혼자 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 같이 책 모임을 하는 Y님도 끌어들였지만 실패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피크민을 나만큼 열심히 하는 K님과, 또 호기심 많고 행동대장인 S님이 있었다. S님은 너무 고맙게도, 내가 추천하는 콘텐츠를 모두 시도해 보고 만족해하는 사람이다. 듀오링고, 손목닥터는 만족했다가 조금 시들해졌지만 어떤 부분에서 재미있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우주형제, 세븐시즈도 읽어보고 너무 재미있다고 좋아했다. 피크민도 지난 SF모임에서 이야기해서 깔았던 거 같은데,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진 않은 듯했다. 그리고 K님과 나의 대화를 들으며 열심히 할 의지를 다졌다. S님의 사육 모임이었던 카톡방은, 바로 피크민 동지들로 이름을 바꿨다.
J님에게 처음 피크민을 권할 때, 어떤 재미로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다양한 카테코리의 캐릭터를 수집하는 재미가 있고, 곳곳의 엽서를 주고받을 수 있으며, 손목닥터보다 몸을 움직이게 해서 좋다, 고 답을 했지만 영 와닿지 않아 보였다. 솔직히 나도 답을 하면서, 말로 전달되기 어려운 재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네 명이 같이 서로 독려하고, 재미있는 부분을 공유하다 보니 J님도 점점 그 재미를 체감하고 있는 게 보였다.
피크민 블룸은 전형적인 수집 게임이다. 수집 게임의 끝판왕인 포켓몬고의 제작회사가 만든 게임이기도 하다. 피크민 IP를 만든 닌텐도는 동물의 숲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수집을 게임의 기본 요소로 넣어놓는다. 2025년 2월 현재, 피크민의 큰 분류는 빨강, 노랑, 파랑, 흰색, 보라, 돌(검은색), 날개(분홍)로 7개다. 실제 피크민 IP에는 이보다 더 많은 피크민이 있다고 하니 늘어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현재는 이 7개의 피크민이 있고, 각각의 데코 카테고리와 모종을 수집한 장소인 고향을 기본 값으로 갖고 있다. 데코 카테고리는 피크민의 밀접도를 4까지 올리고, 선물을 가져오기 전까지는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다. 물론, 큰 화분 모종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선물을 갖고 있어 빠르게 확인이 가능하다. 피크민 블룸엔 데코 일람이 있어서, 앞으로 어떤 데코를 얻을 수 있는지 그림자 형태로 되어 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다양한 데코 카테고리의 모종을 모으고, 밀접도를 올려 선물을 가져오도록 하는 게 메인 콘텐츠다.
그다음으로 킬러 콘텐츠는 엽서라고 생각한다. 친구 간의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기능이기도 하다. 피크민 블룸 안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엽서를 모을 수 있다. 피크민들이 탐험을 하며 엽서를 가져올 수도 있고, 버섯을 잡아서 엽서를 얻을 수도 있고, 길 곳곳에 피는 빅플라워를 피우고 그 옆을 지나가거나, 단순히 꽃잎으로 엽서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게 받은 엽서는 소장할 수도 있지만 친구들에게 보내줄 수 있다. 내가 피크민 블룸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 엽서였다. 치앙마이에 가면 희귀 엽서를 모을 것이고, 여행에서의 색다른 즐거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적중했고, 치앙마이에서 얻은 엽서는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얻은 엽서들은 친구들에게도 보낼 수 있는데, 이왕이면 예쁜 엽서를 보내고 싶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집하는 재미가 있다. 예쁜 엽서는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 예를 들면 이태원, 홍대와 같은 곳에 가면 정말 많이 얻을 수 있어 일부러 그런 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피크민 동지들 방에서는, 이런 엽서를 서로 나누고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말을 나누곤 한다. 그런데 J님은 밖을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 아니어서 엽서 자체도 별로 없을뿐더러, 집 근처 산책길에 있는 표지판, 쉼터, 정자, 놀이터 같은 예쁘지 않은 엽서들만 모으고 있단다. 그래서 다들 예쁜 엽서를 신나게 보내면, J님은 엽서를 받고 나서 보내줄 엽서가 없다고 외치곤 했다. 얼마 전 나는 이태원에 다녀왔고, 예쁜 엽서들을 이것저것 수집해왔다. 오늘도 합정과 홍대에서 엽서들을 수집해서 곧 예쁜 엽서가 갈 거라고 예고를 했다. H님과 S님도 회사 근처라 예쁜 게 별로 없지만, 그래도 오늘은 꽤 예쁜 엽서를 모았다며 자랑했다. 그랬더니 J님이 "쉼터나 정자도 봐줍시다!"라고 보냈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잘 안되고 있어 속상한데, 그럼에도 나도 잘하고 싶다는 귀여운 투정 같아서 웃음이 났다. 너무나 그런 마음이 잘 전달되어,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웃겼다. 한참을 무소음으로 웃었다. 지금도 또 웃었다. 언제쯤 안 웃겨질까.
K님은 4월에 포르투갈 여행을 떠난다고 하며 그때까지 우리보고 피크민을 그만두지 말라고 했고, J님과 S님은 조만간 엽서 탐험 여행을 떠나겠다고 한다. 나도 조만간 남원과 부산, 그리고 4월에는 강릉에 갈 예정이다. 전에 피크민은 삶의 양념 정도라고 했는데 정정하겠다. 피크민도 삶의 낙이 맞는 것 같다. 좋은 동지들을 만나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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