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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광고를 보고 2월 매주 화요일마다 시 필사를 하는 모임에 신청했다. 책 읽는 것은 꽤 좋아하지만, 시집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최근에 한강 작가의 책을 읽으며, 이렇게 시적으로 글 쓰는 게 참 멋있구나 생각했고, 시와 조금 친해지고 싶어졌다. 11월에 밀리의 서재에서 책을 필사하는 이벤트에 참여해 눈으로 읽을 때보다 더 차근히 읽게 되었던 경험과, 최근에 5년 다이어리를 펜으로 쓰며 재미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모임을 기대했다.
오늘이 첫 모임. 최소 모집 인원이 4명인데 딱 그만큼만 모인 듯했다. 그마저도 1명이 오늘은 참석이 어렵겠다고 해서 괜찮을까 싶긴 했다. 그래도 어차피 나는 읽어야 하는 책이 있었고, 새로운 공간에 가서 피크민을 하는 것도 기대되기도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시 필사 모임은 제로헌드레드라는 독립서점과 장마가 시작될 때라는 카페가 같이 진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동네에서 두 주인장이 의기투합해서 했나 싶었는데 서점은 망원동이었고 카페는 경리단길에 있었다. 모임 장소인 장마가 시작될 때는 바 형태의 앉을 곳과 소규모의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몇 개의 테이블이 있는 작은 책카페였다. 이름처럼 비가 오면 밖에 앉아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회사 근처 좋아하는 밥집에서 가볍게 밥을 먹고,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 차를 시켜 모임 전까지 책을 읽었다.
모임을 시작하며, 처음에는 자기소개를 했다. 새로운 사람이 나밖에 없었으므로 내가 먼저 소개를 했다. 나는 국문과를 나왔고, 준운동인으로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나머지 두 분은 제로헌드레드의 마시님과, 장마가 시작될 때의 향유고래님이었다. 시 필사 모임은 이번이 4번째라고 했다. 처음에는 시 필사 모임을 온라인으로 했었고, 그 때는 어떤 시를 썼는지 정도만 공유했었단다. 그런데 오프 모임을 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나누다 보니 시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이번 시즌의 책은 이병률 시인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로, 향유고래님이 오래도록 책장에 묵혀두고 있던 책이라고 했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시 필사 모임을 3시즌 하고 나서, 이제는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선정하게 되었단다. 30분 정도의 시간을 두고 각자 떨어져 시집을 읽고 마음에 드는 시를 2개 이상 골라 필사를 하고 모이기로 했다.

나는 어려웠다. 시는 나에게 늘 그랬지만, 이 시집은 더더욱 어렵게 느껴졌고, 어떤 부분은 반감도 들었다. 그래서 좀처럼 필사할 시를 찾지 못해 초조해 하다가, 그래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시를 발견했다. <시를 어떨 때 쓰느냐 물으시면> 그리고 <왜 그렇게 말할까요> 였다. 필사할 시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시 자체가 길어 필사하는 데도 오래 걸렸다. 그래도 5분 전에 필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나머지 시를 읽었다. 앞으로 3주가 남았는데 다른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안들 것 같았다. 다른 시집의 시를 써도 된다고 하는데 내가 아는 시가 있어야지. 일단 시를 다 쓰고 나서는 모여, 왜 이 시를 골랐는지 그리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를 공유했다.
<시를 어떨 때 쓰느냐 물으시면>은 내가 왜 시를 어렵게 느끼는지를 조금 설명해 주는 시였다. 시는 어떤 때에 영감이 확 와서, 어떤 감정에 차올라서,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뚜렷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는 게 이 시의 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리멍텅한 어떠한 것, 자기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어떤 것을 어떻게든 글자로 잡아둬 보려는 안간힘 같달까. 그래서 그 붙잡아둔 글자는 저마다에게 다르게 느껴지고, 선명하게 잡히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게 기표에 미끄러지는 기의 같아서, 국문과답게 설명을 했다. <왜 그렇게 말할까요> 는 내가 한 말이 누군가에게, 혹은 누군가가 내게 한 말들이, 곱씹고 곱씹어 기억 속에 깊이 남아버리게 되는 것을 잘 표현했다고 느꼈다. 그것도 막연하게 머릿속 어딘가가 아니라, 몸에 딱지가 되어 새겨지는 것 같다는 게 더 아프게 느껴졌다. 아마 나도 예전엔 그런 말들에 쉽게 상처를 받았던 것 같은데, 이젠 무뎌져서 인지 아니면 방패를 잘 쳐서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다른 두 분도 다른 시들을 선택해 필사를 했고, 공유를 했는데 참 다들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각자의 성향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시가 쉽게 느껴지거나, 더 가깝게 느껴지진 않았다. 다른 시집을 읽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시집은 바꾸지 않기로 했다. 모임을 해본 결과, 다음에 읽을 때는 또 다르게 느껴지는 게 있다고 해서 그 말을 믿고 그냥 가보기로 했다. 시를 다 공유하고서도, 각자가 생각나는 것들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눴는데 새로운 분들이다 보니 새로운 관점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다음 주에는 이번 주에 못 오셨던 분도 오실 터라 새로운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시님은 오늘 여행에서 막 돌아와서 에너지가 낮은 데다, 3명밖에 없어서 너무 빨리 끝나고 모임의 분위기가 다운될까 걱정했단다. 하지만 모임 시간을 꽉꽉 채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듯하다.
돌아오는 길은 몹시 추웠고, 시와 친해진 느낌은 거의 없었지만, 다음주에 올 이 길이 오늘보다 더 반갑게 느껴질 거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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