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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이 점점 빠듯해지고 있다. 이건 회사에 애정이 떨어졌다는 아주 직관적인 신호다. 10분 전에 도착하면 아주 양호한 편, 5분 전은 그래도 양심은 지켰다, 거의 정각에 도착하면 어떻게 지각은 면했네. 그러다 이번주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아침에 급하게 휴가를 썼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갈 수는 있었겠지만, 굳이 아픈데도 가야 할까 하는 마음에 가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회사에 늘 애정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이렇게 가기 싫어지는 건 문제가 있다. 그래도 하루 쉬고 나니 조금 나아진 것도 같다. 앞으로 여행을 위해 연차를 잘 모아둬야 하는데, 크게 낭비한 하루.
매년 일기를 쓴 게 아니라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몇 년간은 태풍만 오고 장마 기간은 없었던 것 같은데 7월 한 달 동안은 장마 때문에 비가 많이 올 거란 예보가 있었다. 물론 매일의 예보가 딱 맞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시간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래도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깜짝 놀랄 정도로 비가 쏟아지곤 한다. 어느 새벽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어둠 속에서 소리를 녹음해 두었다. 빛이 하나도 들지 않아 까만 배경에 비가 쏴아아 하고 쏟아지는 소리가 30초간 녹음되어 있다. 이런 상태라 예정되어 있던 오프라인 모임은 뒤로 밀렸고, 온라인 모임만 하게 되었다.
이번 sf모임은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책은 그렉 이건의 대여금고. 올해 2월에 나온 신간이다. 나는 잘 몰랐지만, 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리는 그렉의 수많은 작품 중에 몇 개를 골라 단편집으로 낸 책이라 한다. 내가 행복한 이유를 읽었을 때 첫 단편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해 처음엔 좀 겁을 먹었으나, 그때보단 좀 덜 어려운 느낌이었다. 테드 창이 아주 어렵고, 켄 리우가 너무 가볍다면, 그렉 이건은 그 중간 즈음 어디에 있는 느낌? 이번 책도 첫 단편 01 유괴가 꽤 인상적이었다. 표제작인 03 대여금고도 뷰티 인사이드가 떠오르긴 했지만 소소한 설정들이 그보단 더 현실에 기반한 느낌이었다. 판타지와 SF의 그 어디 중간 즈음에 위치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05 어둠 속으로 는 누군가가 영상화해 주면 좋겠단 생각을 했고, 06 피를 나눈 자매와 11 고치는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여서 그렉 이건의 비판적인 시각을 엿본 듯했다. 읽으며 가장 괴로웠던 건 10 플랑크 다이브였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성이론, 천문학, 양자역학으로 블랙홀에 대한 설명을 제외하고는 그래도 흥미로운 설정과 구조라고 생각했다. 나는 모임 전까지 겨우 다 읽었는데 다들 일부만 읽고 모였다.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던가 독후감을 써야 한다거나 하는 규칙이 없는 우리 모임의 열린 형태가 참 좋다고 느꼈다. 스포일러를 강하게 거부하는 나와는 달리 다들 안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별 상관없어했고 의미 있는 대화들을 나눴다.
다가오는 주말엔 상하이에 가서 슬립 노 모어를 보기로 해서, 이번엔 맥베스를 한번 읽기로 했다. 예전에 셰익스피어를 읽어보려고 4대 비극을 전자책으로 사두었는데 한 번은 리어왕을 읽고 그 당시 여혐 정서에 놀라 읽을 동력을 잃은 적이 있다. 그때는 너무 당연했을 것이고, 문화적인 기반을 고려해 읽어야 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내가 굳이 시간을 들여 기분 나쁜 텍스트를 읽을 필요가 없다 판단했던 거다. 그래도 맥베스는 리어왕보다는 여혐 요소가 적은 편이어서 덜 불쾌하게 읽었다. 이번에 공연을 보면서는 이 텍스트를 읽은 게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비 때문에 수요일에 달리기를 하지 못해 금요일에 하늘공원까지 가서 7.5킬로를 달렸다. 예전보다 오르막을 오르는 게 덜 힘들게 느껴져서 뿌듯했다. 한 주에 총 15킬로를 채워야 하는데, 나머지 7.5킬로는 일요일 아침에 산에 다녀올 생각을 했다. 토요일엔 비가 좀 와서 일요일에 비를 맞고 다녀올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비가 오진 않았다. 전날 늦게 잠을 자는 바람에 일찍 일어나지 못했고, 늦장을 부리다 거의 4시가 다 되어 움직였다. 봉산-앵봉산 코스를 가면 8킬로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하고 움직였는데, 앵봉산은 갈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그냥 왕복코스를 선택할까 몇 번을 고민했다. 그래도 위기를 이겨내고 구파발역까지 도착했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얼려둔 500미리 생수와 포카리스웨트 캔 하나를 들고 갔는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끼며 마셨다. 목에 두른 손수건이 물에 적신 듯 축축했고, 버스에 앉아 한참을 에어컨을 쐬었는데도 옷이 전혀 보송해지지 않았다. 힘들긴 해도 이렇게 땀으로 샤워를 하고 나면 뭔가 큰걸 해낸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
하지만 다음날 다리에 붉은 반점들을 보고는 조금 후회했다. 처음엔 벌레에 물린 줄 알고 모기 퇴치제를 뿌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런데 점점 이 붉은 반점이 더 많아지고 다리뿐 아니라 온몸으로 번지는 것이다. 비주얼에 비해 간지럼은 거의 없어 다행이지만, 증세가 심각해지기만 하고 사라질 기세가 없어 피부과에 갔다. 선생님도 내 몸을 보고 좀 놀랐는데, 알레르기일 수도 있고 바이러스성일 수도 있어서 일단 약을 먹고 판단하자고 했다. 알레르기는 약을 먹으면 증상이 줄어들고 일주일 안에 다 낫는데, 바이러스성이라면 한 달이 갈 수도 있다고 한다. 술을 먹으면 안 되고 몸에 땀이 나도록 운동을 해서도 안된다고 했다. 곧 여행도 가는데, 그전에 나아질 수 있을까. 상하이 가서 뛰려고 챙겨둔 운동복을 빼야 하는 게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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