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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일기

6/27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나비사슴 2024. 7. 1. 13:35

국내 작가의 SF 작품을 읽어보자는 취지로 읽게 된 책이다. 목차가 문어/대게/상어/개복치/해파리/고래로 왠지 회를 먹으며 모임을 해야 할 것 같다는 홍보를 하니, 역시나 먹을 것에 약한 민족(?)인 한국인들이 한 마음을 모아 읽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모임에서 이야기하다 알게 되었지만, 정보라 작가님은 저주토끼라는 작품으로 2022년에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2022년에 토끼 표지의 리틀 아이즈를 읽으며, SF보다는 공포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 저주토끼라는 작품에 대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보니 표지에도 적혀있기는 한데,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도 책을 다 읽고 작가의 말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 대해서는 한 개도 모른 채 읽었다는 소리다.

 

굉장히 빨리 읽히는 소설이었다. 최근에 어려운 책들을 읽기도 했기 때문도 있지만, 글 자체가 잘 읽히는 글이었다. 특히 문어 편은, 한 문장이 한 페이지가 넘었는데도 이해가 잘 되었다. 아마도 장면을 표현하는 문장이라 그랬을 것이다. 더 커뮤니티에서 알게 되어 신청했던 하마(하미나) 작가의 와사비 라이팅 클럽의 뉴스레터가 생각났다. 좋은 글의 기준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매력적인 글은 완벽한 글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장점이 느껴지는 글이라는 것. 이 책이 재미있게 읽혔다고 한다면, 매력은 무엇일까?

 

나는 세계관을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뻔뻔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사실 왜 사랑에 빠졌는지, 왜 외계인들이 지구에서 해양 생물체의 모양을 하고 있는지, 등등 궁금한 점이 있긴 했으나 그냥 그건 원래 그래 라는 식으로 퉁치고 지나가는 점이 그냥 자연스러웠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예브게니는 게의 형태를 하고 있으면서 러시아어를 한다. 왜 외계인이 러시아어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하필이면 주인공은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있어 통역가의 역할을 한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노동 문제로 상담하는 게에게 소주 한 잔이라도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고. 뒤늦게 이 작가의 매력에 대해 생각해 보니, 왠지 주성치의 서유기 - 선리기연에 대해 썼던 글이 생각났다.

 

원래 회로 홍보해서 읽게 된 책이었지만, 우려했던 대로 이 책에 나오는 생물체는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물론 작품 속에서 위원장은 문어를 먹었지만, 최애 대게는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의외로 개복치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하지만 맛은 그다지 기대되지 않음) 알게 되어 흥미로운 책 선정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문어와 대게만 피하면 대부분의 생물체는 구하기도 쉽지 않아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을 때 큰 걱정을 하진 않아도 되었다. 여름이라 회 대신에 초밥을 먹었고, 그런 뜬금없는 책 선정과, 메뉴 선정에 걸맞게 함께 나눈 이야기도 이리 튀고 저리 튀고 난리였다. 그래도 노동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거나, 정보라 작가님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은 꽤 심도 있어서 작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스크린쿼터처럼 한국 작가의 글을 읽자고 해서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좋았던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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