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크레센도

전자책으로 전 권을 갖고 있는 몇 안되는 만화 중, 피아노의 숲이 있다. 클래식을 많이 들어보지도 않았고, 어떤 음악인지도 모른 채, 음악을 묘사하는 장면과 관객의 리액션만으로 푹 빠져들어 본 작품이다. 일본이 유독 쇼팽을 좋아하고, 쇼팽 콩쿠르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이 있어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며, 피아노의 숲이 언급이 됐는데 실상 연주 스타일은 기술이 완벽하고 귀족적이어서 작품 내 아마미야 슈헤이 쪽에 가깝다고 했다. 그때 조성진의 연주는 들어보긴 했는데 내게는 그 완벽한 연주가 잘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다 재작년, 클래식을 잘 듣지 않는 내게도 알고리즘의 인도로 임윤찬의 영상이 떴다. 처음 들어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는데, 귀를 사로잡았다. 저절로 피아노의 숲의 카이가 떠올랐다. 만화에선 늘 카이가 피아노를 칠 때마다 손에 반짝임이 있었는데, 그게 음으로 표현된다면 저런 느낌이었겠구나 싶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강약 조절이 완벽하고 오케스트라와 합이 잘 맞아 보였다. 지휘자가 얼굴에 미소를 띄우거나, 마지막에 눈물을 훔치는 것까지 너무나도 드라마틱했다. 그래서 홀리듯 준결승에서 화제가 되었던 초절기교 연습곡 영상도 보았다. 클래식 수업 책을 읽고 있던 때여서, 생전에 아이돌이나 다름 없었다는 리스트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러다 이번에 크레센도라는 영화가 개봉해 재미있다는 소문이 나 보러 갔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대해서는 임윤찬 영상밖에 알지 못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조금 알 수 있었다. 반 클라이번은 냉전 시대에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회에서 우승을 한 미국 피아니스트라고 한다. 그래서 음악은 사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대표하는 인물로 여겨진 듯하다. 그런데 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2022년에는 전쟁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가 지원을 했다. 러시아의 피아니스트들의 참가를 제한하라는 요청들도 있었다지만,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그들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임윤찬에 이어 2위에 러시아의 안나 게뉴시네, 3위에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초니가 수상했다. 안나 게뉴셰네는 임신 6개월차이고, 결선에 오른 유일한 여성 참가자이기도 하다. 만약 러시아 참가자의 지원을 제한했다면 이런 멋진 결과를 볼 수 있었을까?

 

영화는 임윤찬 외에도 결선에 진출한 몇몇 주요 피아니스트들의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를 했는데도 잘렸는지 아니면 일부만 허락하여 인터뷰를 진행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초반에 비중을 두고 인터뷰를 한 선수들이 떨어지기도 했다. 다큐가 우승자의 스토리를 강조하기보다, 콩쿠르에 참여하는 피아니스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사는 다음에 또 듣고 싶은 피아니스트인가, 를 기준으로 진행되고 참가자들은 자신이 준비해 온 모든 곡을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물론 영화에서는 조각조각 들려주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을 모두 들어볼 수는 없었다. 반 클라이번은 유튜브로 늘 실황을 공개하고, 임윤찬을 통해 재미를 좀 보았기 때문에 다음에 콩쿠르에는 또 어떤 역사의 순간을 함께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유튜브를 통해 영화에서는 들어볼 수 없었던 임윤찬의 모차르트나 베토벤 연주곡도 들으며 집으로 왔다. 정말 뛰어난 재능이다. 내가 살면서 임윤찬의 연주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작년에 조성진의 연주를 듣기 위해 미국으로 간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으며 놀랐었는데, 나처럼 언젠가...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는 어렵겠지. 음질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나의 막귀에 감사하며, 유튜브로나마 그의 새로운 곡들을 많이 들어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