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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4/28 리움 : 필립 파레노

나비사슴 2024. 4. 29. 18:52

언제나처럼, 이태원에서 밥을 먹은 대학동기 생일 모임. 다들 바쁘다 보니 3명의 생일을 한꺼번에 축하하는 자리로 모였다. 브런치를 맛있게 먹고, 지난번에 갔던 카페를 또 운명처럼 들렸다. 어제 너무 힘들었던 터라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날씨가 좋았고 우리가 오래 함께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화를 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이제 헤어지려고 하는데, J가 근처 리움에 들른다고 했다. 최근에 미술관에 다녀온 지도 오래되었고 해서 나도 같이 가자고 나섰다. 스웜을 찍어보니 거의 12년 전에 아니쉬 카푸어전을 본 게 마지막 방문이었다. 이번에 하는 기획전은 필립 파레 노란 현대미술작가라고 했다. 어떤 기본 지식도 없이 그냥 무작정 가보겠다고 했는데, 전시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좀 놀랐다. 리움의 마당을 지키고 있던 큰 거미가 웬 다른 탑으로 대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 교체된 이 ‘막’이라는 작품은 알고 보니 이 전시의 일부였다.

이번 필립 파레노의 전시는 ‘보이스’라는 제목이었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지지직 거리는 소리, 웅얼거리는
소리, 피아노 소리, 기타 소리, 다양한 소리들이 들린다. 다른 소리들은 작품에서 나는 소리지만, 지지직거리고 웅얼거리는 소리는 막에서 수집한 외부환경데이터를 인공언어와 조합한 소리라고 했다. 이 인공 언어는 배우 배두나와 협업한 결과라고 했다. 이 알 수 없는 소리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피커로 이 전시장 전체에 소리를 흘리며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리움에는 두 개의 전시장이 있었고, 그중 한 곳은 물고기 헬륨 풍선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엔 어떤 기계적인 장치가 있나 싶었는데 단순히 사람들의 움직임에 의한 결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거였다. 막이나 풍선을 보면 필립 파레노는 랜덤한 요소를 작품에  적용하는 듯싶었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녹고 있는 작은 눈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려고 했다는데, 날씨에 따라 얼마나 녹을지가 달라질 테니 이 역시 랜덤한 요소가 중요한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작품을 분석하거나, 주요 의미를 파고들만큼의 지식이 없어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재미있다/재미없다 혹은 내게 인상 깊은가/무료한가 정도로 감상하게 된다. 그런 평가 기준에서 필립 파레노는 꽤 ‘재미있다’가 몇 가지가 되었다. 또 ‘인상 깊은가’도 있었는데, 이건 필립 파레노가 티노 세갈이라는 작가에게 요청해서 이번 전시에 함께 수행되는 행위예술 작품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너무 놀랐는데,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을 통해 보이스를 더 주의 깊게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10년이 넘어 다시 찾은 리움은, 내게 또 하나의 인상 깊은 경험을 주었다. 아니쉬 카푸어를 오래 기억하고 좋아하게 된 것처럼, 필립 파레노도 앞으로 어디선가 만나면 반가워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시 찾을 그날까지 내가 미술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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