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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최근엔 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았다. 한 두개씩만 유튜브로 찍먹하거나, 대략 후기만 살피고 아예 보지 않는다. 드라마의 만듦새는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대부분 웹소설 원작이라 비슷한 부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미가 당기지 않아, 무인도의 디바 외에는 챙겨본 드라마가 없었다. 그래도 어떤 드라마가 재미있는지는 동태를 살피곤 하는데, 일본 드라마 중 브러쉬 업 라이프가 재미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었는데 2회차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기회를 노리다 이번에 연휴동안 달렸다.
콘도 아사미는 태어난 지역에서 삼십년이 넘게 늘 차로 배웅해주는 여동생, 다정한 어머니, 여자 셋이 있어서 그런지 어딘가 기죽은 아빠와 함께 평범하게 살고 있다. 시청 직원으로 일하며 민원인에게 시달릴 때도 있지만, 다른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며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퇴근 후 절친인 2명의 친구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사미의 이런 평범한 일상은 갑자기 차에 치이면서 끝이 난다.
사실 2회차 삶에 대해서는 들었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의외로 친구들과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생일 축하를 요란하게 하지 않는 걸 좋아하지만 매년 만나는 걸 보는 식당 직원이 자신이 소외된 것으로 생각할까봐 신경을 쓴다거나, 학교 내내 1등만 하다 파일럿이 되어 잘 나가는 친구 이야기를 하다가 못나가는 친구는 없는지 못난 이야기를 한다거나 하는 친한 친구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마음 속 불편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진행되는 흐름이 너무나 뜬금 없어서 내 친구들과 하는 이야기를 사찰한 줄 알았다. 친한 친구들과는 일본이고 한국이고 똑같구나 싶었다.
평범한 1회차의 삶을 살던 아사미는 죽은 뒤, 내세의 삶이 과테말라의 개미핥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믿을 수 없어 천국(?) 직원에게 물어보니 덕에 따라 내세의 삶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현세에서 콘도 아사미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른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 살아간다. 재미있는 부분은,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타임리프를 하면 부동산을 미리 산다거나 복권을 사거나 하는 자본주의적 선택을 하는데, 덕을 쌓기 위해서인지 자신의 이득을 위한 선택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른의 기억을 갖고 있어 남자애들도 유치해보여 연애에도 관심없는 삶을 살아간다. 직장과 몇몇의 소소한 사건 외에는, 1회차와 비슷하게 살아가다 2회차에도 차에 치여 끝나고 난다.
이런 흐름이 3회차 까지 진행되다 4회차에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3회차까지 개미핥기, 고등어, 성게.. 로 태어날 뻔했기에, 4회차에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서, 이전 회차까지 친하게 지내던 두 친구와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름만 알고 지내던, 파일럿이 된 친구와 친해지게 되는데 그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 내내 유쾌하기만 하던 드라마에 눈물 버튼이 삽입된다. 이렇게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아사미의 다음 회차 선택에 영향을 주게 된다.
분명 죽음과 극한의 외로움이 있지만, 줄곧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내 마지막까지 너무 좋은 드라마였다. 이번에 바카리즈무라는 각본가와 안도 사쿠라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게 될 듯하다. 언내추럴 이후,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소개할 수 있는 좋은 일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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