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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3/13 이젠 기적밖에 남지 않았다

나비사슴 2024. 3. 14. 08:30


독수리의 세 알 중 마지막 알 마저도 깨어나야 하는 시기가 지났다. 이 독수리 둥지를 관찰하는 사람들은 이제 알이 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나 보다. 페이스북 그룹은 다시 가입을 받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되었다. 이젠 공지에 unlucky 하게도 온도, 습도, 수정되지 않음 등등 우리가 알기 어려운 이유로 알이 깨어나지 않는 것 같다는 글이 올라왔다. 유튜브에서 그 공지글을 올린 사람이 방송에 나와 인터뷰하는 영상도 보았다. 이렇게 알이 부화하지 않으면, 독수리들도 조금씩 알에 소홀해진다고 한다. 몇 분씩 둘 다 둥지를 떠나 있는 시간이 생길 것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수리들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알을 정성껏 품고 있다. 다른 이글캠을 검색했더니 얼마 전 새끼 두 마리가 깨어난 독수리둥지가 있었다. 미국 서쪽인 빅베어와 달리, 동쪽인 이 둥지는 거의 야간캠이어서 독수리들이 먹이를 먹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다만 새끼들이 꿈틀거리며 자는 모습을 보며, 이게 내가 보고 싶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하지만 크게 감흥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다를 것이 없고 구분도 못할 독수리이건만, 왠지 재키와 쉐도우에게 더 정이 들어버렸다. 아마도 빅베어밸리의 둥지를 돌보는 사람들이 써 놓은 글들을 보며 이미 감정 이입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독수리들을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 하니 정말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마지막까지, 그러니까 이제 독수리들이 둥지를 떠나 까마귀나 다른 동물이 알을 깨기 전까지, 독수리들은 변함없이 알을 품을 것이다. 그들에게 ‘희망‘이 남았다거나 ’기적‘을 바라는 마음은 없겠지만, 깨어나지 않을 알들을 부리로 모으고 가슴을 한껏 비비며 알을 따스히 유지하고 둥지 주위의 나뭇가지들을 다듬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감정은 이 둥지를 살펴보는 사람들의 것이다. 나는 이젠 기적밖에 남지 않은 이 둥지를, 깨어나지 않을 알을 품는 독수리를, 쉽게 떠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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