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일기

자아도취도 이유가 있을지 몰라

나비사슴 2025. 5. 6. 23:18

오붓 모임의 책으로 오랫동안 책장에서 묵혀두었던 [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읽기로 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난 이후에 장애인의 삶을 이해해보고 싶어 구매했던 책인데, 872쪽이나 되는 두께에 차마 혼자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연휴 내내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오늘 여유가 되어 카페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직 초반만 읽었는데도 내 삶을 돌아보게 되는 문장들을 많이 만났다.

이 책은 2권으로 나눠져 있다. 1권에서는 청각장애, 다운증후군, 자폐와 같은 장애 판정을 받는 몸과 정신에 관련된 정체성을 다룬다. 2권은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들이나, 범죄자가 되는 아이들의 부모처럼 사회적으로 구분되는 정체성을 다룬다. 이번엔 1권만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에서 정체성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인종과 같은 수직적 정체성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이들끼리 공감대를 형성하는 수평적 정체성으로 나뉜다고 설명한다. 수직적 정체성은 물려받은 특성이므로 부모에게 이해받기 쉽지만, 수평적 정체성은 부정당하거나 혹은 경험해 볼 수 없는 한계로 인해 이해받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동성애는 수평적 정체성으로, 태어난 혹은 발현된 그대로 인정받기보다 부정하고 고칠 수 있는 성향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저자의 경우에도, 어머니에게 다른 부분에서는 포용을 받았으나, 동성애에 대해서는 매우 강력하게 부정당하는 경험을 했다. 심지어 자녀가 게이로 살면서 자식을 키우며 배우자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지, 이성애자로 독신 혹은 아이 없이 배우자와 불행하게 살기를 바라는지를 답하게 한 여론조사에서 3분의 1이 후자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만큼 수평적 정체성은 인정받기 어렵다.

나는 사회에서 인정할만한 정체성을 대부분 갖추고 있고, 누구보다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대부분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물론,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업하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는, 이른바 ‘정상 경로‘를 따르지 않았으므로, 어느 정도는 비혼 정체성을 획득한 게 아닌가 싶긴 하다. 그래도 동성애나 장애와 같이 사회적으로 배척당하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는 않아 어릴 때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다. 그런 정체성 고민의 당사자가 아닌데도 나는 다양한 정체성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해하고 싶어 하고, 포용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다.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만족을 위해 열정적인 호의를 제공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도와주려는 행동이나 욕설을 하는 행동은 실제적으로 적이 된다는 점에서 같단다. 상대는 도움을 원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에 자아도취되어, 무작정 손을 내민다. 나의 이런 무지에 의한 호의가 그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장벽이 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를 도우며 큰 보람을 느낀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지만 딱 떨어지는 정답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도움을 받고 싶었던 것 아닐까?

부정당할만한 수평적 정체성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릴 때 부모님에게 충분한 공감을 받지 못했다고 느껴왔다. 나는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지만 다른 사람의 반응을 빠르게 캐치하고 깊은 감정을 느끼곤 한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했다. 또래 친구들이나 선생님, 그리고 그 외의 어른들도 내게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나는 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내가 어릴 때 열린 마음을 가진 어른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랬다면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관계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하며 스스로를 억누르기보다, 내가 가진 능력들을 더 잘 개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랫동안 외로움에 갇혀있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더 일찍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오랫동안 연락을 못하고 마음에만 고마움을 담고 있던 분이 떠올랐다. 나에게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신 분이다. 최근에 그분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갖고 있던 연락처는 이제는 없는 번호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그분께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혼자 TV는 사랑을 싣고를 찍어야 한다. 사실 그 이야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연락할 용기가 없었는데, 오늘 이 책을 읽으며 꼭 만나 뵙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

그분이 부디 아프지 않고, 살아계셔서 연락이 닿을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