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일기

2/2 영등포구청에서 6시간

나비사슴 2025. 2. 3. 06:57

오랜만에 J언니와 만났다. 원래 J언니랑은 K와 자주 만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셋이 약속을 잡았다. 내 기억으론 대학 때 K가 J언니를 무서워하면서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고, 나는 같이 있다 보니 친해졌던 것 같다. 나는 K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J언니랑 신촌역 6번 출구 중간에 서서 1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눴던 것으로 보아 같이 지내는 시간이 즐거웠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우린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로 얼굴도 그대로다,라고 말했더니 J언니는 냅다 흰머리가 많아졌다고 했다. 점점 눈이 안 좋아지고 있는 나는 모임이 끝날 때까지 언니의 흰머리를 눈치채진 못했다. 분명 많이 달라졌을 터인데, 서로 다름을 크게 인지하지 못하고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이야기의 주요 소재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J언니는 오래전에 아버지가, K는 어머니가 돌아가셔 이제 홀로 남은 부모님을 부양하는 상태였다. 나는 부모님이 두 분 다 살아계시고, 갈등이 있긴 하지만 두 분이 자식에게 폐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상태여서 이렇게 내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수 있었구나, 싶었다. 이제 부모님의 노화와 투병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이고, 그때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덜 다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엄마는 챗GPT로 블로그를 쓰고, 요새는 AI가 만들어주는 음악에 푹 빠져 있다. 이번 연휴에 눈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나서 아빠와 함께 오징어게임 시즌 1-2를 주파했단다. J언니는 체력도 체력이지만,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는 이해력 자체에 놀랐다. 이렇게 정력적인 두 분이지만, 혹시나 몰라 요새 건강 체크를 해야겠다 생각하던 차, 돌아오는 길에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최근에 블루스크린이 계속 뜨는 엄마의 컴퓨터를 바꿨는데, 그 이후에 ㅊ만 누르면 계속 프레젠테이션 도구라는 게 뜬다는 거다. 처음엔 키보드 문제일까 싶어, 아빠 컴퓨터에 연결해서 써보시도록 했는데 키보드에는 문제가 없었다. 집에 도착해 엄마 컴퓨터를 원격으로 연결했고, 30분 동안 헤매다 픽픽에 단축키 설정이 되어 있는 걸 발견해 문제를 해결했다. 전화를 끊기 전, 건강이 어떤지 감기나 독감에 걸리진 않았는지 물어봤는데, 문제없다는 말을 들었고 문제가 해결된 상태였기 때문에 빠르게 전화가 끊겼다. 나중에 엄마는 챗GPT한테 물어봤을 때는 답이 안 나왔는데, 딸이 더 낫다며 카톡을 보내왔다.

내가 긍정적이고, 밝고 명랑한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 부모님 덕이 클 것이다. 우울의 유전자는 분명 있었던 것 같지만, 환경적으로 걱정이 적어 많이 깊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릴 때 당연히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도 있고 모두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나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것들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동거인인 동생까지도. 새삼 그런 것에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