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게스트와 함께 달리기
수요일, 달리는 날이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각했다. 한강 라이브 영상에서 여의도의 빌딩들이 뿌옇게 되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날은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재난문자가 난리를 쳤지만, T님이 게스트로 오겠다고 약속해서 안 갈 수가 없었다. 늘 겸손한 태도에 운동에 있어서는 성실한 타입이어서 마음으로 응원하는 친구다. 몇 년을 클럽에서 열심히 활동하다 작년에 갑자기 클럽을 나가,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을 했다. 게다가 다른 대회들은 나가고 있어, 클럽에서 무슨 상처를 받았나 싶은 마음에 먼저 연락을 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스트라바에서 내가 뛰는 것을 열심히 응원을 해주고 있어, 언젠가 스치듯 한번 연대로 오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게 오늘이었던 거다.
T님은 별도로 달리기 훈련을 하지 않는다고 해 인터벌 하는 날 오면 좋았을 텐데, 오늘도 조깅을 한다고 해서 조금 아쉽긴 했다. 사실 조깅이라고는 해도, 한 번도 조깅다운 페이스로 달려본 적은 없긴 하다. 오늘은 24바퀴만 뛰기로 했다. 감독님은 내일 건강검진이 있어, 전날 뛰면 염증수치가 올라온다고 해 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도 뛰는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점점 속도를 올렸다. 나는 5:30 정도의 페이스만 유지하려 했는데, 마지막 5바퀴 정도 남았을 때부터 카본화를 신은 친구가 속도를 올리기 시작해 거의 4:50 페이스까지 달렸다. 미세먼지 때문일 수도 있고, 저녁을 먹지 않고 뛰어서일 수도 있고, 그 앞에 쉬지 않고 달렸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너무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T님이 붙어서 달려야 한다, 잘하고 있다, 더 힘을 내라 격려를 해주어 더 많이 뒤처지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달리고 나서는 다들 쿨하게 헤어지기 때문에, 나는 T님과 별도로 뒤풀이를 갔다. T님은 이직하게 되어 남은 연차로 쉬고 있어, 오늘 올 수 있었다고 했다. 회사가 수도권에서 멀어 평일에 보기 힘들었는데, 이제 별내 쪽으로 옮기게 되어 그나마 더 가까워졌단다. 그동안 모습을 비추지 않았던 건, 부상 때문이라고 했다. 축구를 하다 어이없이 다친 새끼손가락 때문에 수술도 하고, 계속 재활도 했는데 좀처럼 낫지 않아 지금은 포기 상태라 했다. 징징대는 타입도 아니고, 혼자 참는 스타일이어서 그동안 내심 속이 많이 상했겠다 싶었다.
심적으로 다 회복하진 못했겠지만 이직에 성공해 마음에 여유를 찾은 듯했다. 앞으로는 별내에 있는 러닝 크루에 가입해 운동하고 싶다고 의견을 내비쳤다. 운동을 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자 냅다 OMM에 같이 가자 제안을 했다. 지난번엔 여성 듀오로 다녀왔고 올해엔 남녀혼성팀으로 다녀와도 되지 않을까 내심 생각했었다. 그래서 같이 가기 편한 M오빠에게 매번 던져봤는데, 좀처럼 미끼를 물지 않았었다. 근데 의의로 T님이 긍정적으로 답하는 거였다. 그동안 아침저녁으로 뛰는 내 모습을 보고 신뢰하게 된 걸까?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훈련할 거라고 어필을 했고,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기에 앞으로 더 흔들어 봐야겠다 생각했다.
1차로 밥을 먹고 2차로 차를 마시러 갔다. 근래 낯가림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은 물론이고, 단체로 보던 사람을 1:1로 만날 때도 긴장을 한다고. 근데 생각해 보니 T님과 단둘이 만난 건 처음인데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동안 클럽에서 뒤풀이를 하며 수다를 많이 떨었기 때문일까? T님이 먼저 쉽게 말을 걸어주는 타입이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낯가림은 내가 이 분위기를 끌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상대방이 어떤 리액션을 보일지 걱정이 되어서일지도. T님은 그런 점에서 걱정되는 부분이 없었고, 그 때문인지 요새 내 고민도 나눌 수 있었다. 진지하게 들어준 덕분에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었고.
정말로 같이 OMM에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계기로든 올해는 조금 더 얼굴을 많이 봤으면 한다. 낯을 가리지 않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귀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