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7/30 상하이 슬립 노 모어 여행
오랜만에 공항에 갔다. 작년 7월에 이탈리아에 다녀온 게 마지막이니, 1년 만이다. 빨리빨리의 민족 한국은 얼굴 인식과 지문으로 입국심사하는 것 외에도, 스마트패스도 만들었다. 가방 검사 전 안으로 들어갈 때 빨리 들어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인데, 아직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아 덕을 좀 봤다. 다만, 이번에 가는 게 중국이다 보니 미리 체크인 창구에서 비자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우린 모두 온라인 체크인을 하고 짐을 맡기지 않아서 비행기 타기 바로 전에 좀 당황하긴 했다.
상하이에 도착하니 비가 많이 왔다. 원래는 태풍이 올 예정이라 했는데 이 정도로 그쳐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미리 예약해 둔 픽업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중국어를 잘하고, 상하이에 익숙한 멤버가 있어 헤매는 것 없이 잘 도착했다. 다만, 호텔에서 예약해 둔 방이 아직 치워지지 않았다며 거의 두 시간을 기다리게 해서 곤란했다. 별지비자에 우리는 죄다 주부로 기재되어 있었는데, 중국어를 할 줄 알았다면 이 상해주부단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언어 소통의 어려움으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곧 다행히 다른 방으로 변경해 주어 문제는 해결되었다.
2018년에 상하이에서 처음 보고, 2019년에 뉴욕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슬립 노 모어는, 여전히 훌륭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났는데, 이번에는 맨덜리 바로 이동하는 어둠의 통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른쪽 손으로 벨벳 촉감의 벽을 더듬어서 이동하다 보면, 마치 토끼굴로 빠져 이상한 세계로 들어가는 토끼가 된 기분이 드는 것이다. 표가 있으면 음료 1잔을 마실 수 있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아쉽게도 피부병 때문에 논알콜을 마셔야 했는데, 알콜이 들어간 상태로 보는 것도 좋았을 것 같다.
첫째 날은 맥베스 텍스트를 읽었다 보니, 맥베스를 조금 따라다녔다. 전에는 왜 맥베스가 괴로워하고, 레이디 맥베스가 그를 현혹하는지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번엔 배경지식이 있어 전에 봤던 장면도 새롭게 보였다. 특히 마녀들의 두 번째 예언인 광란의 파티씬은 다시 보아도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여러 번 봤는데, 다양한 각도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맥베스가 오기 전 마녀들은 어떻게 관객들을 이끌고 무대로 모이는지, 아기 모형이 어디서 나오는지, 왜 마녀들이 지친 채 작은 나무 모형을 옮기는지를 알 수 있어 더 좋았다.
첫째 날은 메인 스토리를 거의 따라가다 보니 배우들을 열심히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1:1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둘째 날은 상하이 오리지널 백사전 스토리를 주로 보기로 했다. 전에도 일부를 봤지만, 이번엔 목적을 가지고 더 끈질기게 따라다녀 스토리를 거의 다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뱀신부와 쌍둥이 느낌의 섹시위치와 1:1을 할 수 있었는데, 배우가 너무 예쁘고 매력이 있어 더 기뻤다.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연기해서 끌어안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왠지 배우에게 손목을 잡는 것 이상으로 큰 스킨십을 하는 게 실례처럼 느껴졌다.
몸을 쓰는 것만 보면 볼드위치가 아주 훌륭했다. 전에 봤던 볼드위치는 대머리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번의 배우는 머리를 깎았고 중간에 가발을 썼다가 벗는 듯했다. 슬립 노 모어는 2.5루프로 동일한 사건을 3번 정도 반복하는데, 그걸 위해서는 중간중간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관객들 모르게 정리하는 게 불가능하니, 그것 역시 퍼포먼스의 일부가 된다. 또 어떤 씬을 위해서는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대부분 검은색 마스크의 직원들이 하지만 때로는 배우가 직접해야 할 때가 있다. 근데 이걸 이번 볼드위치가 매우 잘해서 감탄했다. 중요한 씬뿐 아니라, 별것 아닌 씬도 멋지게 보여주니 돈과 시간을 쓴 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원래 낮 공연도 있다고는 했는데, 상하이에 왔으니 가볍게 돌아다니고 싶어 나는 밤 공연만 두 번 봤다. 그리고 전에는 가보지 못했던 프랑스 조계지와 신천지를 가보았다. 사실 상하이는 대도시이고, 서울처럼 갖출 것을 다 갖춘 곳이어서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서울의 가로수길과 명동을 다녀온 느낌이긴 하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교통 신호 체계,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멋진 쓰레기통, 알리페이로 이동하는 지하철 등등은 흥미로웠다. 게다가 지나가다 들린 상하이 도서관이 뜻밖에도 재미있어서 P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크게 돌아다니지 않았고 중간중간 잘 쉬고 자서 힘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근데 다음날 출근길에 정신을 놓고, 석촌역까지 가는 바람에 지각을 하고 말았다. 일 하면서도 자잘한 실수가 있어서 조심해야겠다 생각했다. 체력에 자신 있다 생각했지만, 쉬는 걸 소홀히 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월요일과 화요일 모두 곯아떨어져 일찍 잠들었다. 루틴 체크 못한 건 많지만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하루를 보내기를 목표로 삼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