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간절함의 부족
늘 타고 다니던 6-2-수 루트와 다르게, 6-4-9 루트엔 급행이라는 변수가 하나 있다. 물론 매일 같은 시간대에 움직이긴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경로가 하나 더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도 집에서 늦게 나와 마음이 조급했는데, 조회해 보니 9호선을 갈아탈 때 급행을 탈 수 있었다. 급행과 일반열차는 가는 데 걸리는 시간 차이가 좀 있고, 간혹 일반열차는 급행을 먼저 보내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있어 급행을 타는 게 무조건 이득이다.
열심히 동작역에서 환승 구간을 지나 9호선 플랫폼에 도달했다. 플랫폼 오른쪽에 몇몇 사람들이 타지 않고 서있었다. 어떤 9호선 역에서는 한 플랫폼에서 급행과 일반열차를 탈 수 있지만, 동작역은 양쪽으로 나뉘어 한쪽은 일반열차, 다른 한쪽은 급행열차를 탈 수 있다. 9호선에서 급행열차를 타지 않는 사람들은 보통 일반열차만 가는 역에 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오른쪽이 일반열차 플랫폼인가? 했는데, 동작은 양쪽으로 나뉘어 타니 이상하다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른쪽이 급행열차 플랫폼이었다. 열차에 너무 많은 사람이 타고 있어 안타는 사람들이 앞에 서있었던 것.
그래서 얼른 다음칸 쪽을 살펴봤다. 사람들이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급행열차가 문을 닫지 않아 다음칸, 또 다음칸으로 이동했다. 사실 발 하나 디딜 틈이 있는 칸도 있긴 했으나, 발만 디딜 수 있고 내 가방은 문 밖으로 튀어나와 문이 닫히면 이별할 것 같았다. 아니 사실은 내 가방을 소중하게 꽉 끌어안고, 발을 하나 디뎌 엉덩이를 들이밀면 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 내가 6-4-9 루트를 택한 이유, 쾌적함과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려 일반열차를 타기로 했다. 몇 분 뒤 일반열차가 도착했고 이번엔 열차칸이 내 몸과 가방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고속터미널까지는 급행열차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사평역에서 급행열차를 보내기 위해 조금 기다렸다. 내 부족한 간절함 때문에 회사에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그게 내 우선순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지만, 새삼 내가 살아오는 모든 결정들이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것을 꼭 이루겠다는 간절함 없이, 하다 보면 되겠지 하는 낙관을 가지고 살았다. 기대치를 낮췄기 때문에 쉽게 만족했다. 지금도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올해 계획하고 있는 여행들을 생각하며 뒤로 미루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땐 꼭 필요하고 더 중요할 수 있는 이직보다는, 지금 당장 내 삶을 즐겁게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다. 어떻게든 되겠지. 중요한 건 내가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선택을 하는 거라 생각한다. 늘 그래왔듯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고마워하길 바라며 즐겁게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