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일기

3/11 가장 존경하는 사람

나비사슴 2024. 3. 12. 08:42

과제 제출의 날, 질문지를 작성해 준 친구들의 답변을 정리했다. 최소 5년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이 정성스럽게 그리고 고심해 작성해 준 것이 느껴졌다. 때론 내 성향을 날카롭게 파악한 것이 너무 웃기고, 또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해서 답변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스스로 하는 인터뷰 질문지에는 10년 뒤에 어떻게 살고 있을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는데, 매일 웃을 수 있도록 대화할 친구들이 주변에 있길 바란다는 답을 적었다. 아마 내 질문지에 작성해 준 친구들이 그때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즐겁게 답변들을 정리하고, 30개의 스스로 인터뷰 질문지로 돌아왔다. 지난주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항목들을 채워 넣었는데, 애를 먹었던 부분은 나와 잘 어울리는 10가지 단어와 내 성격을 설명하는 10가지 단어였다. 왠지 모르게 두 개가 겹치게 하기는 싫었고, 또 이 단어가 성격을 표현하는가 아닌가, 이걸 단어로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데서 많이 고민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아래처럼 확정 지었다.

* 나와 잘 어울리는 단어 : 도전, 모험, 자유, 재미, 호기심, 동안, 고양이, 헤르미온느, 피터팬, 활발한 히키코모리
* 내 성격을 설명하는 단어 : 단호, 명랑, 긍정, 솔직, 진지, 귀찮음, 신뢰, 흥분, 낯가림, 몰입

친구들이 적어준 단어와 비교했을 때 비슷한 것도 있고, 의외의 것도 있었다. 친구들이 적어준 단어 중에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 ‘웃음, 행동력, 공감’ 그리고 ‘사슴’이었다. 그렇지.. 내 오랜 별명인 사슴을 잊고 있었다.

그 외에도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많았지만, 그중에 최고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존경? 도대체 존경이 뭐지? 내가 닮고 싶은 사람? 롤모델? 나는 언제나 이 질문에서 콱 막히곤 한다. 정말 다른 질문은 꾸역꾸역 채웠는데 도저히 이 존경이라는 단어를 내가 체화한 적이 없어 작성하기 너무 어려웠다. 그냥 존경하는 사람도 아니고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니, 그 정도의 무게감으로 존경하는 사람은 없는데… 나만 이렇게 존경하는 사람 없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사는 걸까? 하는 마음으로 회사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도(?) 다들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해 주었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드디어 존경하는 사람을 찾아냈다.

그 사람은 바로, 홍진경이다. 처음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건 무한도전 때부터다. 새로운 멤버를 모집하는 에피소드에 유일한 여자 멤버로 참가해,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으로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여자 개그우먼으로 나갈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았던 때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욕망을 힘껏 드러내는 것이 너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 이후에는 언니쓰를 통해 부족한 모습이지만 엄청 노력하고, 그런 모습들을 보이는 데 두려움이 없어 보여 부럽다 생각했다. 그런 자세를 그대로 살려 공부왕 찐천재 채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너무나 호감이었다. 또 한 회사의 CEO로서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보려 몽골이며, 미국이며 돌아다니는 부분이나 모델로서의 일도 놓지 않는 부분도 멋있게 느껴졌다. 게다가 깨알같이 PPL을 야무지게 챙기는데, 그 모습이 전혀 얄밉지 않고 늘 진심이 느껴져 좋았다.

호감에서 그치지 않고 그에게 존경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건, 홍김동전에 나와 사람들 앞에서 ‘자존감’을 올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 걸 듣고 나서다. 그에게 자존감은 남한테 보이는 자동차나 옷, 구두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매일 베고 자는 베개의 면, 매일 입을 대고 마시는 컵의 디자인,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의 정리정돈 상태 같은 것들을 지키며 올라간다고 했다. 남들에게 보이진 않지만, 자신을 돌보고 살피는 것들이 기반이 되어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 나한테 맡겨지는 일, 모든 것을 정말 예쁘고 퀄리티 있게 잘하게 된다고 했다.

누군가가 알려줘서 배운 것이라기보단, 스스로 체득한 것이라는 점이 너무 잘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집을 하나하나 꼼꼼히 꾸미고, 집에 온 사람들에게 정성스럽게 음식을 대접하는 모습이 다 이런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구나 하고 느꼈다. 나도 그렇게, 나를 잘 돌보며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내 부족한 부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만하면 존경, 이라는 말을 붙일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