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일기

2/25 사상 검증 구역 : 더 커뮤니티

나비사슴 2024. 2. 26. 13:23


더 커뮤니티가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었는데, 한 달이 다 지나서야 보게 되었다. 이념 서바이벌이라고 하는데, 다이어트 서바이벌만큼이나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웨이브를 구독해야 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오랜 웨이브 구독자여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은 이퀄리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페미니즘의 반대쪽을 이퀄리즘이라고 지칭하는 제작진이 만든 프로그램을 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볼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종종 마주치는 글도 그렇고, 신뢰할만한 사람들이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는 글도 추천 일색이어서 주말에 시간이 난 김에 한번 보기 시작했다. 참가자 12명은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의 네 가지 항목으로 사상검증검사를 진행했고 각 항목은 1-3까지의 수치로 표현된다. 마치 MBTI처럼 4가지 항목이고, 완전한 중간은 없이 한쪽 성향을 반드시 가지게 된다. 성별은 6:6으로 동일하고, 또한 사상도 대부분 6:6이라고 들었다. 직업도 다양한데, 한 가지 모두의 공통점은, 적어도 다들 교양을 갖췄다는 거다.

1회 초반은 꽤 자극적이었다. 필터를 거치지 않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나 할법한 말들이 발화된다. 그렇게 각자의 인터뷰에서는 솔직히 드러내지만,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는 함부로 그런 말을 하지 못한다. 서바이벌의 특성상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돈을 가져간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처럼 참가했다고 해서 마냥 돈을 주지 않는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낮과 밤에 경제활동을 하는데, 그중 밤에 하는 경제활동은 익명채팅이다. 익명 채팅의 주제는 미리 힌트를 주는데 첫 번째 힌트가 바로 ’남자는 잠재적 가해자다‘라는 문장이었다. 게다가 이 문장에 동의하는 사람이 2사람이 있다는 추가 정보도 있었다. 다들 맛있게 밥을 먹다가 이 문장을 보곤 잠시 정적이 흐른다.

더 커뮤니티에서는 서로를 공격하는 방법이, 다수의 투표가 아니라 사상검증점수를 맞추는 것이다. 그 때문에 서로 대화할 때는 사상을 드러낼 수 있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저녁 식사를 하다 정적이 흘렀지만, 그 주제에 대해 깊게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익명 채팅에서는 다르다. 익명이기에 자신의 의견을 맘껏 드러내고, 또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현실 반영인 것이, 일상 생활에서는 괜찮은 사람인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상상도 못할 말들은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아직 4회까지밖에 보지 않았지만, 사람간의 갈등은 사상의 차이보다는 태도에서 오기 더 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에 화가 나고, 나와 다른 생각을 지녔어도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는 서로 다르구나 인정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간다. 그리고 좋은 태도로 임할 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준비가 된다. 사실 이퀄리즘이라는 말도 그렇고, 계급 항목에서 가난이 아니라 서민으로 표현한 것도 불쾌하지 않은 용어를 선택하려는 세심한 배려로 느껴졌다. 비난받지 않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뒤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끝까지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도 배우는 점이 많았고 흥미로운 부분에 많은 프로그램이라 생각이 들었다. 사상과 관련해 교육 프로그램 같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한동안 추천하며 돌아다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