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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5/7 어스시의 마법사

나비사슴 2024. 5. 10. 08:20


어슐러 르 귄 시리즈를 읽고 끝날 줄 알았던 모임을 어스시 연대기로 이어가게 되었다. 어스시 연대기는 어슐러 르 귄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이다. 어떤 사람들은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더불어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기도 한단다. 영화로 성공한 앞의 두 작품들에 비해, 어스시 연대기는 지브리에서 말아먹은 게드 전기를 비롯해 영상화는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인지도가 낮다고 한다. 연대기는 전체 6권인데, 68년에 1~3권을 썼고 20년 뒤에 4~6권을 썼다. 그래서 분위기가 다르지만, 아마도 필력이 더 늘었을 20년 뒤의 작품이 그리 나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전에 어슐러 르 귄의 시리즈를 읽으며 혹독하게 단련한 우리는, 어스시 연대기의 첫 책인 ‘어스시의 마법사’를 아주 수월하게 읽었다. 심지어 나는 그전까지는 시간을 내서 25%까지만 읽었는데, 오늘 아침부터 점심시간까지 부지런히 읽어 1권을 모두 읽어버렸다. 책 자체가 길지도 않거니와, 이전에 읽었던 어슐러 르 귄의 작품들에 비해 복잡도가 낮았던 때문이다. 물론 ’진짜 이름‘을 알아야 마법으로 쓸 수 있다는 개념 자체는 낯설고 그 외에 알아야 하는 설정도 있긴 했다. 그래도 주요 흐름이 명확해서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1권은 아마도, 앞으로의 3권의 이야기의 주인공일 새매(진짜 이름: 게드)가 마법사가 되는 이야기다. 어슐러 르 귄의 장기라고 생각하는, 성장 소설이다.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새매는 남들보다 빨리 배웠지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서인지 인정받고 싶어 했다. 자존심이 매우 셌고,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사사건건 새매를 긁어대는 보옥의 기를 눌러주려다, 목숨을 잃을 뻔했다. 위대한 마법사 덕분에 목숨은 구했지만, 그 마법사는 새매를 구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사건으로 그는 기다리는 것, 참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그것으로 시련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시련을 마무리하는 게 1권의 이야기다.

요즘 이야기 문법을 생각하며 뒤통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가, 너무나 직구로 오는 이야기여서 조금 당황하기는 했다. 어스시 세계관이 진짜 이름이 가지는 힘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진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특별한 기교를 넣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스시의 마법사는 청소년 소설이라 알고 있었는데, 과연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심오했다. 그건 어슐러 르 귄의 모든 소설이 그러한 듯싶기도 하다.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을 읽었을 때도, 이 책은 청소년이었을 때 읽으면 좋았겠다 싶으면서도 어려워서 읽지 않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황금가지에서 펴낸 어스시의 마법사 표지가 새삼 이야기를 잘 표현해 낸 듯싶었다. 원본과 다른 판본에서는 어떻게 표지를 만들었을까 싶었는데, 워낙 오래된 책이라 정말 다양한 형태의 표지가 있어 놀랐다. 연대기의 다른 책들도 읽어가며 표지들을 수집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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